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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의 도그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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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러나 도그마가 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뜻이 고약해진다. 사전적 의미로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을 말한다. 논리적으로 규명되지도 않았고, 엄격한 학문적 검증을 거친 것도 아닌데도 옳다고 고집하는 주의와 주장이다. 많은 이들이 진위를 의심하는데도 자신만이 맞다고 외친다. 심지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된 경우에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도그마가 횡행하는 사회에선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도그마를 앞세운 선동가들은 대중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교묘한 수사(修辭)로 여론몰이에 나선다. 도그마의 반대편에 서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공적(公敵)으로 매도당한다. 의심스러운 주장이 당연시되고 명백한 잘못도 묻혀버린다.

요즘 청와대와 정부가 내놓는 경제정책을 보면 나라가 온통 도그마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인 논의와 이성적인 판단을 제쳐놓고 일방적인 주장과 여론몰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강남 집값 때려잡기에서 시작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이제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돼 버렸다.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정책에 공무원들은 뒷북치기에 바쁘다. 권위주의를 버리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그의 확신에 찬 권위 앞에 경제전문가라는 보좌진과 관료들은 감히 반대하거나 이의를 달 엄두를 못 낸다. 당초 정책의 목표가 정당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고사하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유효성에 대한 평가도 제쳐놓은 채 관련 대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인다. 그리곤 거액의 예산과 정부기구를 총동원해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부동산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입안에 참여한 공무원들에게 무더기로 훈장과 포장, 대통령 표창을 돌렸다. 이쯤 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거의 도그마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대통령이 한 번 옳다고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옳다는 식이다.

재정 확대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아예 대놓고 "작은 정부를 공약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의 규모를 키우되 할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큰 정부의 필요성과 효율성은 아직 검증된 바도 없고, 큰 정부로 가자는데 국민적 합의에 이른 적도 없다. 오히려 큰 정부의 폐해는 역사적 경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공무원 수와 예산을 더 늘리고, 모자라는 돈은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친다. 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데서 오는 부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우려와 지적은 안중에도 없다. 복지 지출을 어디에 어떻게 늘릴 것인지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한데도 복지 지출의 확대는 이미 기정사실화됐고 재원 마련만이 문제라고 한다. 근본적인 논의는 생략한 채 '큰 정부론'은 이제 이 정부의 도그마로 굳어졌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는 도그마로 될 일이 아니다. 정책을 독단과 아집으로 밀어붙인 대가는 국민이 치를 수밖에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