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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때 2년간 급여 90% 보장, 강원도의 ‘겐트 시스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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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청년 실업률 전국 1위(2015년 말 기준 12.8%, 전국 평균은 9.2%)로 최악이고 청년 고용률도 33.8%(전국 평균은 41.5%)로 전국 최하위. 강원도 청년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최장 8개월 주는 고용보험 보완책
노사합의로 일정액 5년 적립하면
강원도가 추가로 보조금 지원
올 예산 3억 배정, 업체 2곳 시범실시
기업선 “고용보험과 이중부담 우려”

이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강원도가 파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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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는 15일 지역 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해고당할 경우 평소 받던 급여의 최대 90%를 최장 2년간 보장하는 ‘강원일자리 안심공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덴마크의 ‘겐트(Ghent)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현행 국내 고용보험제도의 단점을 대폭 보완한 고용 안정 모델이다.

현행 고용보험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자와 기업이 절반씩 보험금을 내고 근로자가 직장을 잃으면 퇴직 전 3개월 급여로 평균 임금을 산정해 수당을 지급한다. 액수는 월 최고 130만원으로 최장 240일(8개월)까지만 지급된다.

반면 강원일자리 안심공제는 예컨대 기업과 근로자가 각각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강원도 역시 일정 규모의 보조금을 추가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금액은 노사 합의로 결정하고 적립은 5년간 한다.

만기 때 적금처럼 일시금으로 받거나 분할금으로도 받을 수 있다. 만기 이후에는 5년 단위로 연장도 가능하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도 별도로 받을 수 있다.

강원도는 이르면 상반기 중에 시멘트 제조사와 리조트 업체 등 비정규직이 많은 업체 2곳을 선정해 시범사업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미 올해 도예산 3억원을 편성한 상태다. 김용철 강원도 대변인은 “시범 운영을 통해 성과가 나면 내년부터 신청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모든 사업장이 고용보험에 가입된 상황에서 추가로 지원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보험과 함께 부담이 2배가 되는 만큼 전면적 참여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자칫 기업들이 강원도에 투자하기를 꺼리거나 떠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는 좋기 때문에 어떻게 정교하게 디자인해 활용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노사 합의와 행정기관의 지원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해고가 아닌 휴직을 권장해 이 기간 동안 적립한 기금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방식 등을 포함시켜 활용하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지적에 따라 강원도는 19일 춘천시 중앙로 강원발전연구원에서 덴마크 대사관 관계자와 국내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소요재원 분담, 기간 설정, 보완 문제 등을 꼼꼼히 점검하기로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덴마크·스웨덴 등 복지제도가 정착된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이 제도가 정착되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해고되더라도 두 가지 안전장치(고용보험과 안심공제)가 있어 불안감을 덜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선 해고된 근로자의 반발이 줄어 결국 노사 윈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겐트 시스템

1901년 벨기에 겐트 지방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실업 등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 이후 프랑스·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스위스·스웨덴으로 확대됐다. 강원도가 벤치마킹한 것은 덴마크식 겐트 시스템이다. 실직 이전에 받던 급여를 기준으로 임금 수준에 따라 월 42~90%까지 최대 2년간 지급된다. 수급 자격은 덴마크 거주 만 18~64세로 1년 이상 실업보험기금에 가입돼 있어야 하고, 3년 동안 일을 하되 매 1년마다 최소 1924시간 이상씩(파트타임은 1258시간) 노동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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