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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산업의 ‘본질’ 외면한 P2P금융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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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성준 렌딧 대표

김성준
렌딧 대표

P2P금융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한국P2P금융협회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890억원이던 협회 가입사의 누적 대출집행금액이 지난해 12월에는 4600억원을 넘어었다. 지난해 상반기 10여 개 사에 불과했던 협회사도 어느새 34개 사로 늘어났다.

이처럼 P2P금융이 급속하게 성장함에 따라 금융 당국이 빠르게 규제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 주관의 ‘P2P금융산업 가이드라인’ 재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고, 11월 초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업계 역시 이같이 빠른 당국의 규제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금융산업인 만큼 당국의 규제와 더불어 대중적인 신뢰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중 일부가 지나치다는 업계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조항이 P2P업체 및 연계 금융회사의 ‘선(先) 대출’ 금지 조항이다. 현재 많은 P2P업체가 대출자에게 자기 자본으로 우선 대출을 해 주고, 투자자를 모집해 원리금수취권을 판매하는 선대출 모델로 운영 중이다. 대출자들은 3일 이내에 대출받기를 원하는 반면, 투자금이 모이는 데에는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P2P 대출 고객은 제2금융권 대출신청 고객과 유사하다. P2P금융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고금리대출로 내몰렸던 고객층이다. 이들이 중금리대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면, 이는 서민금융을 후퇴시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세계 많은 P2P금융기업들이 자기자본대출과 선대출 모델 등 다양한 방식으로 P2P금융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미국 역시 산업 초창기 인지도가 낮아 투자자 모집이 어려웠을 때, 선대출 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중금리 대출이 가능한 우량 대출자에게 대출을 우선 집행하고, 우량 채권에 투자할 투자자를 모집하며 산업 태동기를 넘어섰다.

P2P금융은 이미 서민금융의 한 축으로 가치를 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P2P 대출자의 절반 이상이 카드론이나 저축은행, 대부업 대출을 갈아타는 대환대출 고객이다. 이들 대부분이 4~6등급의 중(中)신용자로, 10% 안팎의 중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으나 중금리 대출 상품이 없어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던 고객들이다. 렌딧이 2015년5월~2016년 12월까지 1년 7개월간의 대환 대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대환 대출을 통해 절약한 이자는 무려 10억원에 달했다.

P2P금융은 ‘중개’와 ‘여신’이 융합된 새로운 금융산업으로, 궁극적인 사업의 목적은 ‘합리적인 중금리 시장의 창출’이다. 그러나 현재 가이드라인에서는 이러한 산업의 ‘본질’보다는 투자를 모집한 후 대출을 하는가, 혹은 대출을 먼저 한 후 투자를 모집하는 가라는 ‘절차’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금융산업에 적합한 규제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차나 기존 산업과의 이해관계에 앞서 새롭게 변화하는 산업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이 금융혁신의 시작이 될 것이다.

김성준 렌딧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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