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BIG Picture

종교개혁 500주년의 정치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환영 논설위원

김환영
논설위원

지난 미국 대선에 나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로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감리교 신자였다.(미국에서는 아직 대놓고 무신론을 표방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해방 후 한국 종교 인구는 4~6%
참전 미군 중 상당수가 루터교
정치 상황이 종교 지형을 좌우
통일친화적 종교가 흥하게 될 듯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종교개혁을 촉발하지 않았다면 장로교도 감리교도 없을 것이다. 괴테·칸트·바흐·헨델·노벨·슈바이처·안데르센 같은 위대한 인물들도 루터교 신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의 대문에 대사부(大赦符·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였다. 하나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망치로 붙였다’ ‘접착제로 붙였다’는 설과 함께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루터에게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용기는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제국과 교회를 상대로 싸운 루터는 어떻게 그의 선배들과 달리 화형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불교인은 연기(緣起), 그리스도교인은 섭리(攝理)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속인들의 눈은 다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종교의 생존과 부흥을 결정하는 것은 국내·국제 차원의 정치 상황이다.

루터교는 유럽 종교전쟁(1524~1648)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의 이면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로 무장하기 시작한 국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럽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와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스도교는 종교의 자유라는 원칙·가치의 보호 속에 유럽의 팽창과 함께 전 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도 도달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는 종교 인구가 차츰 줄고 있는 유럽형 종교 지형을 닮아가고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럽에서처럼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 무신론이 유입돼 종교 지형에서 한자리를 확보했다. 역사를 따져보면 다른 측면이 떠오른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조선왕조와 함께 붕괴한 유교가 남긴 종교 공백을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불교·가톨릭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중시되는 미국의 영향권에 우리나라가 포함된 덕분에 모든 종교는 친종교 환경을 누렸다. 보수정권이 진행한 산업화 또한 종교의 급성장에 유리했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 발표 이후에 1위 자리를 내준 불교와, 자체 집계(565만 명)와 비교했을 때 통계청 수치(389만 명)가 너무 낮은 가톨릭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진이 좀 있다. 하지만 종교는 부침을 거듭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 융성하다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게 종교다.

종교개혁 500년은 개신교에 새로운 개혁을 요구한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개신교 선교 132년을 맞아 출범한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가칭)가 추구해야 하는 것도 개혁이다. 다른 종교 신자들도 자신이 믿는 종교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할 것이다.

물론 선교·전도를 열심히 하고 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 상황과도 맞아야 한다. 개혁은 통일 친화적이어야 한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정치 흐름을 타면 흥하고 못 타면 쇠퇴할 것이다. 언젠가는 북한이라는 ‘거대 종교 권역’이 열린다. 통일 전후로 종교 순위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종교가 할 일이 많다. 뭔가 역할을 찾아내면 살고, 못하면 밀릴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무한책임을 질 수는 없다. 종교마다 일정 부분이라도 옛 북한 주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루터교를 믿는 미국 병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병력 자원을 5대호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지역은 루터교 신자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루터교는 신자 수가 현재는 5000~6000명 정도다. 하지만 통일시대를 대비해 거대한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종교계에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분노의 정치’에 종교가 해답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분노는 이 글을 루터로 돌아가게 만든다. 루터는 ‘분노의 사도’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분노했을 때 기도도 더 잘하고 설교도 더 잘한다.” 이 말은 2017년 한국에도 묘한 울림이 있다. 어느 쪽 입장에 속하건 촛불 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 감정을 대표하는 것은 분노다. 통일 이후에도 남한 출신이건 북한 출신이건 극심한 분노를 느끼게 될 정국이 들이닥칠 수 있다. 하루빨리 분노를 넘어 한국을 리셋(reset)하는 프로세스가 시작돼야 한다. 종교인의 도움이 필요한 시대다.

김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