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하루 12시간 ‘엉덩이의 힘’ … 목표 채우면 스스로 “잘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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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여고 2학년 권혜민양
서울 잠실여고 2학년 권혜민양은 집에서 스탠딩 책상을 자주 쓴다. 권양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졸리면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일어선 채로 한두 시간 공부한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여고 2학년 권혜민양은 집에서 스탠딩 책상을 자주 쓴다. 권양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졸리면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일어선 채로 한두 시간 공부한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여고 2학년 전교 1등 권혜민양은 하루 공부 시간이 많을 때는 12시간일 정도로 공부량이 많다. 권양은 “엉덩이 힘은 어릴 때부터 좋았다”며 “끈기와 우직함이 내 무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권양은 전교 1등 비결로 ‘긍정의 힘’을 꼽았다. 권양은 “계획했던 하루 공부량을 잘 마치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할 때 기분이 정말 좋다”며 “자신감도 생기고 내일도 잘하자고 마음 먹게 된다”고 했다. 권양의 집중력의 비결은 칭찬과 긍정의 힘이었다.

칭찬→자신감→집중→끈기로 이어져
혼자 공부, 수학은 질문만 받는 학원 다녀
과목별 문제집 두 권 정도 2~3회 반복

시간 못 채우면 ‘내일 열심히 하자’ 다독여
권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학년까지는 하루 종일 놀기 바뻤다. 권양은 “놀다가 지쳤을 정도로 정말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담임교사 덕분에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일기쓰기 숙제를 너무 하기 싫어서 시를 적어갔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와~ 우리 혜민이 시인이네. 너무 멋지다’라고 칭찬을 해주는 거예요. 혼날줄 알았는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그 선생님께 칭찬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죠.”

포스트잇에 핵심 개념을 정리해 붙여 놓은 프린트물(위)과 하루 공부시간이 적힌 권양의 공부 플래너.

포스트잇에 핵심 개념을 정리해 붙여 놓은 프린트물(위)과 하루 공부시간이 적힌 권양의 공부 플래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권양의 어머니 김정주(48·거여동)씨도 “가족끼리 하루에 두 가지씩 꼭 서로 칭찬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가 어릴 때 책을 읽고 시 쓰기를 좋아했었다. 그냥 아이가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하도록 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양은 “가끔은 부끄러울 정도로 엄마는 내게 칭찬을 많이 해줬다”며 “그런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했다.

칭찬은 긍정을 낳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자신감과 활력으로 이어진다. 권양은 매일 밤 12시에 하루를 점검하고 내일 공부 계획을 세운다. 일기처럼 쓰는 공부 플래너에는 매일 ‘9H25M’‘8H46M’와 같은 표시가 돼있다. 권양이 그날 공부한 총 시간이다. ‘9H25M’는 9시간25분이라는 뜻이다. 항상 스톱워치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 시간을 체크해둔다. “계획했던 공부를 잘 마치면 ‘오늘 하루도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다 채우지 못하면 ‘내일 열심히 하자’고 다독여요. 계획대로 잘 한 날은 뿌듯한 마음에 신나고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껴져요.”

친구와 공부량 서로 점검하며 자극 받아
권양은 학기 중에는 최소 5시간, 방학 중에는 많게는 12시간까지 혼자 공부한다. 한 번 앉으면 2시간가량은 일어나지 않고 공부할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는 ‘할 수 있어’‘화이팅’ 같은 힘이 솟는 말을 틈틈이 노트에 적으면서 마음을 추스린다.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힘을 얻는거다.

졸음이 밀려 올 때는 스탠딩 책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학교뿐 아니라 동네 독서실과 집에서 공부할 때도 스탠딩 책상을 자주 이용한다.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1~2시간 서서 공부한다. 권양은 “열심히 하자는 마음먹기만으로 안될 때도 있다”며 “그럴 때는 자기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일부러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권양은 집중력 유지에 “친구와의 선의의 경쟁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권양은 친한 친구와 매일 밤 하루 공부량과 계획 실천 정도를 서로 공유하며 점검한다. 공부와 관련된 일종의 자극제다. “계획을 세우고 나만 알고 있으면 ‘에이 오늘 하루는 뭐 어때’라는 생각에 어느 순간 긴장이 풀어질 수 있는데, 이렇게 경쟁 상대가 있으면 묘한 경쟁심리가 발동해서 자극이 되요. 아직은 제가 이긴 날이 많아요 하하.”

권양은 중학교까지 국어·영어·수학 학원을 다녔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국어·영어 학원을 끊었다. 이번 겨울방학부터는 다니던 수학학원도 자율학습을 하면서 질문만 받아주는 곳으로 바꿨다. 강의를 듣는 교과 학원은 한 곳도 안다니는 셈이다. 권양은 “학원은 양으로만 승부하는 곳 같다. 무작정 양만 늘려 많이 풀기보다는 오래 걸려도 혼자 힘으로 끙끙대면서 푼 문제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권양은 공부할 때 양보다는 질에 집중한다. 안 풀리는 문제는 표시를 해뒀다가 한 두 시간 후 또는 다음날 다시 풀어본다. 해답은 보지 않는다. 그렇게 3~4번을 반복해 도전한다. 문제와 관련된 개념을 찾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교재 속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찾아 훈련하면서 풀이법을 찾는다. 국어는 주제를 찾고 단락별 핵심 키워드를 분석한 뒤 정답과 오답의 이유를 정확하게 찾고,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30분 가까이 시간을 쓰기도 한다. 때문에 각 과목별로 문제집이 많지 않다. 과목별로 두 권 정도를 두 세 차례 반복해 본다. “처음에는 안 풀렸다가도 다시 도전했을 때 풀리면 그때 ‘해냈다’는 희열감에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이 좋아져요. 더 나은 풀이법을 찾다보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죠.”

눈으로 계속 훑고 개념 떠올리며 반복

권혜민양.

권혜민양.

원래 머리가 좋은 걸까. 권양은 손사래를 치며 “전 암기를 잘 못해서 맨날 까먹는다”며 “특히 사람 이름을 못외워서 1학년 때 한국사 공부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대신 “우직하고 끈기 있게 달라붙는다”고 말했다. 약한 암기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권양이 택한 방법은 눈으로 훑으며 반복해서 보기다. 권양은 “평소 눈길이 자주 가는 물건이나 장소를 활용하면 좋다”고 권했다. 핸드폰이 좋은 예다. 권양은 시험 준비 기간이면 핸드폰 뒷면에 핵심 개념과 공식을 적은 작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투명 케이스로 핸드폰을 덮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핸드폰을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포스트잇에 눈길이 가고, 자연스럽게 눈으로 훑으면서 반복해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눈으로 자주 훑고 머릿속으로 계속 개념을 떠올린다. 이때 권양만의 비법이 있다. 암기해야 할 개념의 갯수를 숫자로 단순화시켜 기억한 뒤 하나하나 내용을 풀어가면서 설명해본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국어 문학 작품 3개가 시험 범위이고, 첫 번째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기억해야 할 개념이 5개, 두 번째는 3개, 세 번째는 4개라고 했을 때, ‘3534’라고 숫자로 먼저 외운다. 그리고 ‘이번 시험에는 3개 작품이 중요해. 첫 번째 작품은 5개의 핵심 개념이 있었지. 첫 번째 특징은 ~였고 두 번째 특징은 ~였지’와 같은 식으로 하나씩 풀어가면서 내용을 떠올린다. 권양은 이때 “각 과목별로 교과서의 목차와 학습목표를 외우면 효과적”이라고 충고했다.

마무리는 질문이다. 시험 대비 기간이면 수업이 끝나고 교사에게 질문하느라 쉬는 시간을 다 쓰는 일이 많다. 하루에 질문 갯수가 20개를 넘길 때도 있다. 권양은 “내가 잘 알고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해도 꼭 질문해 더 간결하고 빠른 풀이법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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