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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등록금 면제 깃발…서울시는 도입 무산

중앙일보

입력

미국 뉴욕주가 대학 등록금 면제 깃발을 들어올렸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민주당)는 3일(현지시간) 뉴욕시 라과르디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뉴욕주 공립대학 등록금 면제 계획을 발표했다. 가구 연소득이 12만5000달러(약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 뉴욕주립대와 시립대,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입학생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내용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행사에서 "대학 교육은 사치품이 아니라 경제적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등록금 면제 기준인 소득 12만5000달러 이하 대상은 약 94만 가구로 뉴욕주의 80%에 해당한다. 8대 2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20%의 부자가 아닌 80%의 중하위 계층에 대해 무상 대학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뉴욕주는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공립대 학비가 저렴한 곳이다. 뉴욕주립대와 시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약 6500달러(약 800만원)다. 쿠오모 계획대로 등록금을 면제하는 데는 한해 1억6300만 달러(약 20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됐다.

등록금 면제는 애초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의 핵심 공약이었다. 학자금 부담에 짓눌리는 젊은 세대가 샌더스에 열광하게 된 출발점이기도 했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총액은 1조2000억 달러(약 1446조 원)가 넘는다. 뉴욕주의 학자금 대출 평균은 약 3000만원에 육박한다. 쿠오모의 표현을 빌면 많은 대졸자들이 “다리에 족쇄를 묶고 경주를 시작하는 셈”이다.

이날 쿠오모 옆에는 샌더스가 함께 했다. 샌더스는 “혁명적인 구상”이라며 쿠오모에 힘을 실었다. 사실 대표적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공립대 무상 교육 시행은 전례 없는 일이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격이 다분한 정책이어서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학 지원에 앞서 있다는 테네시주와 오리건주도 커뮤니티칼리지의 학비를 면제해주고 있을 뿐이다.

특히 쿠오모는 민주당원 중에서도 중도 성향이 짙은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대학 등록금 면제를 들고 나온 것에는 대략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미국 정치의 시계추가 점차 포퓰리즘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이 젊은 세대의 좌절과 양극화 해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긍정론이다. 관건은 의회의 예산 배정인데 전망은 긍정적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주 하원도, 공화당이 다수인 주 상원도 협조를 약속했다.

샌더스는 이날 “장담한다. 뉴욕주가 올해 대학 등록금을 면제하면 다른 주들이 따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의 말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미국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인 뉴욕이 미국 사회 정책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끌어올리는 조치도 뉴욕주가 채택하자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한국도 수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대학생들과 중산층 이하 가계를 옥죄기는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등록금 부담 경감 논의는 '반값 등록금'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의 등록금 전액 면제 구상을 제기했다가 논란 끝에 유보된 사례가 있다. 당시 서울시의회에선 박 시장의 발언이 충분한 예산 검토 없이 나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립대 학생들도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며 등록금 전액 면제에 반대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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