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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 수상의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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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 칼럼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느냐”였다. 묻는 사람들은 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 정부 예산을 관리하는 기관의 임직원, 기자, 대학 교수와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등으로 다양했다. 지금까지 국내 연구자들의 업적으로 볼 때 수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0년이라는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은 40세 이하의 주니어 과학인들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상당수 노벨상 업적이 이 연령층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대학으로 치면 포닥이라 불리는 박사 후 연구원이나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조교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업적이 많은 시니어들은 자기가 하던 연구의 관성에 빠져 원심력을 이탈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 명의 시니어에게 연간 30억원을 주는 것보다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는 10명의 젊은이들에게 3억원씩을 지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연간 3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5년간 100명을 지원한 후 재평가하고, 60명으로 압축해 연간 5억원씩을 준다면 노벨상 수상 확률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좋은 연구자를 뽑으려면 먼저 노벨상이 어떤 성과에 주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노벨 과학상 분야는 물리, 화학, 생리의학인데 수상 업적은 다음 4개 중 하나에 해당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과학적으로 탐구했더니 새로운 발견이 나온 경우, 기존 학설과는 동떨어진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한 경우,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실용화 성과, 인류의 보건에 영향을 미친 연구결과다. 모든 업적의 공통점은 기존 지식에 정보를 조금 보태는 증분(增分)형 기여가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10월마다 언급되는 노벨상 수상 가능한 한국인들의 이름을 볼 때마다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런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300억원은 우리나라 R&D 예산 19조원의 0.2%도 안 된다. 화학과 생리의학 분야에서 십수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LMB의 1년 예산은 1000억원 정도다. 즉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제대로 못 써서 노벨상을 못 타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창의적이고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는 20~30대 젊은이들을 지원하되 좀 현명하게 운영해 보자. 다음 회에 그 방법을 다룬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