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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Outlook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늘 돌아오는 새해이지만 2017년 정유년은 유난히 그 느낌이 남다르다. 지난해 말, 촛불 속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해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분노했던 것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잘못된 행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의와 공평의 가치가 무너진 데 대한 것이었다. 이에 더해 정경유착과 잇단 법조인들의 잘못된 행위는 국민에게 “정의란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라는 영화 ‘내부자들’ 속 안상구의 이야기는 이를 대변한다. 로마의 법률가 울피아누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시민들이 원하는 정의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닌 이처럼 소박한 것이다. 각자가 노력한 만큼 각자의 몫을 가질 수 있으면 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부정의는 각자가 그 이상의 몫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견제와 균형의 근본적인 전제는 투명성이다. 결정과 집행이 투명한 절차 안에서 이뤄진다면 부정의가 자리 잡을 여지는 줄어든다. 모두가 지켜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도화된 시민사회의 자연스러운 구조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지난해 구의역에서 한 젊은이가 작업 도중 사망했다. 젊은이의 유품에서 채 뜯지 못한 컵라면이 나왔다. 금수저, 흙수저가 사회의 화두가 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나라에서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은 청년들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다. 물론 떳떳하게 형성된 부모의 재력을 향유하는 것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자식의 행복을 원하기에 부모들은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삶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인적 부의 향유와 사회적 기회의 부여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기회를 주는 과정에서 부모가 가진 배경의 영향력은 공정한 게임의 룰을 해친다. 정의와 공평은 여기에서 맞닿는다. 정의란 대등한 관계였을 때 가능하다. 사회적 역할을 위한 기회의 출발점은 동일해야 한다. 기회의 불균등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이며,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공평을 달성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제도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벼락출세가 ‘용’이라면 그런 ‘용’은 우리 사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구조도 이상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바라는 그런 소박한 공평함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청소년 자살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성적과 진학에 따른 스트레스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가 단판승부의 사회여서다. 최근에 방문한 어느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본 글귀다. “꿈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 도착할 시간이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평생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당사자는 물론 가족 모두가 대학진학 단 한 번의 승부에 올인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경쟁만 남고 소통과 협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사람의 노력은 그 사람 전체 인생을 통해 평가받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이 우리 삶의 평범한 일상이 되는 것을 원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참사 당시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재난을 포함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는 무기력했다. 그 후 다시 1년이 지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응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최근의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대한 대응은 미흡했다. 한국의 재난안전과 질병 등에 관한 법은 선진국의 것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결과가 발생했을까. 결국 실천의 문제였다. AI 발생지역과 인근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 정도가 대응지침을 지키지 않았고 한 지방자치단체는 서류상으로만 방역본부를 설치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다. 그 기본에 충실한 나라를 원한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바람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무리한 것도 아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전한 사회의 기본적 요건들이다. 올해는 이러한 바람을 담아낼 수 있는 개헌 논의가 펼쳐질 것이며, 대통령 선거도 있다. 개헌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시기적 이해가 갈린다. 그러나 모두 다 공감하는 것은 20년 전의 헌법이 양적·질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한 대한민국에 걸맞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의 바람을 반영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역시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장밋빛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로 꾸며진 화려한 약속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공약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준비기간이 짧아 공약의 현실성과 구체성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섣부른 공약이 제시되고 이를 무리하게 지키는 일은 공약을 안 지키는 것보다 더 큰 해악을 가져온다. 칼 포퍼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보다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라”는 말로 추상적 모호성이 가져오는 공허함을 경계했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이 느꼈던 분노는 새해에 이뤄 낼 일들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촛불에서 나타난 성숙한 민의는 2017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지난해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이제 정치권도 그 수준에 맞게 화답할 때다. 이것이 정유년 새해를 맞아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