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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한국 외과 의사들 세계 최고…‘다빈치 로봇’ 발전에 기여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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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수술 로봇 만드는 ‘인튜이티브 서지컬’ 굿하트 대표

게리 굿하트 인튜이티브 서지컬 대표는 “로봇이 하는 수술이 더 안전하고 후유증이 적으며 환자가 빨리 회복한다”고 자신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게리 굿하트 인튜이티브 서지컬 대표는 “로봇이 하는 수술이 더 안전하고 후유증이 적으며 환자가 빨리 회복한다”고 자신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의사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돕는 것이 다빈치의 역할이다.”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만드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게리 굿하트 대표는 “사람들이 다빈치를 오해하는 점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 병원에서 사용 중인 로봇 수술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AI)이 아니라 의사들이 모든 작동을 통제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는 “자동화 기술이 일부 적용된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한 굿하트 대표를 만나 로봇 수술기의 역할과 앞으로의 방향, 로봇 수술 발전에 기여한 한국 의료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빈치, 540도 회전 팔로 정밀 수술
AI로 오해하나 수술은 의사가 주도

다빈치는 의사가 조종하는 ‘집도의 조종관’, 수술 부위를 동료 의사가 확인하는 ‘비전키트’, 그리고 로봇 팔이 있는 ‘환자키트’가 모인 로봇 수술기다(왼쪽부터). [사진 인튜이티브 서지컬]

다빈치는 의사가 조종하는 ‘집도의 조종관’, 수술 부위를 동료 의사가 확인하는 ‘비전키트’, 그리고 로봇 팔이 있는 ‘환자키트’가 모인 로봇 수술기다(왼쪽부터). [사진 인튜이티브 서지컬]

솔직히 로봇이 내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불안하다. 왜 다빈치를 사용해야 하는가.
“더 안전하고 후유증이 적고 환자가 빨리 회복한다. 다빈치는 최소절개를 위해 설계된 로봇이다. 몇 개의 작은 절개만으로 복잡한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 후 남는 흉터나 외상 스트레스가 적어 회복이 빠르다. 손가락보다 가늘고 540도 회전이 가능한 로봇 팔을 사용한 덕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 로봇 팔 끝엔 카메라가 달려 있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수술 부위까지 정확하게 시술할 수 있다. 다빈치는 로봇으로 불리지만 자체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수술은 전적으로 의사의 주도하에 이뤄진다.”
한국을 중요한 시장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유가 궁금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점점 많은 병원이 다빈치를 도입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46개 병원에서 61대의 다빈치를 사용 중이다. 또 하나는 한국 의료진이 로봇 수술기 발전에 기여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의사들이 어떤 도움을 줬나.
“한국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다. 한국 의료진이 개발한 위암·직장암·전립샘암·갑상샘암 로봇 수술법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수술법을 교육용 DVD에 담아 보급하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만 의견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의사들이 대장암이나 일반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 좀 더 면밀하게 의견을 듣게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로봇 수술 기술을 가진 나라로 꼽힌다. 세브란스병원은 2013년 단일 기관 세계 최초로 로봇 수술 1만 건을 달성했다. 수준도 높다. ‘간 이식을 위한 간 절제술’이나 ‘갑상샘암 겨드랑이 접근법’ 같은 독창적인 수술법도 개발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 관계자는 “다빈치를 설계한 우리들도 몰랐던 활용법을 한국 의사들이 착안해내 깜짝 놀라곤 했다”고 설명했다.

사업 초기 LA 병원서 구입해 연구
수술 성공률 높게 나오자 보급 확산

로봇을 수술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나왔나.
“1960년대에 아이디어가 나왔다. 공상과학소설 수준이었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80년대 들어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의미 있는 시제품은 90년에 등장했다. 나는 93년 이 기술에 심도 있게 접근하고 있던 팀에 합류했다.”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공대를 나온 굿하트 대표는 칼텍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로봇을 연구하고 있었다. 93년 미국 국방첨단과학기술연구소와 국립보건원에서 스탠퍼드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전쟁터에 필요한 원격 수술용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로봇 수술팀에 있던 지인이 수학적 연산에 대한 업무 지원을 굿하트 대표에게 부탁했다. 수술용 쥐의 혈관을 로봇 수술기로 접합하는 일이었다. 굿하트 대표는 “봉합 수술을 하며 로봇 의료기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눈이 뜨였다”며 “해당 팀으로 전근을 요청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전 세계 3500대, 누적 수술 300만 건
한국선 46개 병원서 61대 사용 중

미국에서 사업 초기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의사들이 다빈치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슈는 ‘로봇 수술이 사람 손으로 하는 수술보다 안전한가’였다. 치열한 논쟁을 마무리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 로봇의 위험성을 증명하겠다는 연구에서 나왔다. 로봇 수술에 흥미를 느낀 매니 매논이라는 의사가 로봇 수술에 대한 자료를 학회에서 발표했는데 수술 성공률이 너무 높게 나왔다. LA 소재의 대형병원이 정의 구현을 외치며 다빈치 10대를 구입해 연구를 시작했다. 전립샘 수술을 하는 의사들이 관심을 보인 가운데 결과가 나왔다. 매논 박사의 발표가 옳았다는 것이다. 이후 다빈치 판매가 급증했고 2003년엔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되며 회사가 성장했다.”

한국 의료진 로봇수술법 국제 표준
설계팀도 모른 활용법 착안해 놀라

지금 전 세계에선 3500대의 다빈치가 환자를 치료 중이다. 누적 수술 횟수도 300만 건에 달한다. 기술에선 열린 문화를 자랑하지만 굿하트 대표가 난색을 표한 분야도 있었다. AI 적용 문제다. 그는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처음엔 자동차 사각지대를 없애고, 두 번째는 주행 중 추돌을 줄여야 한다. 그다음은 차로 변경을 할 수 있어야 자율주행으로 간다. 문제는 의료 영역에서는 이런 과정이 거의 끝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AI의 수술 진행을 위해서는 경계가 없는 무한대의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며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미 FDA 승인받은 유일한 로봇 수술기 업체…여러 기업서 도전장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유일한 로봇 수술기 제조업체다. 선도 주자의 프리미엄에 노하우까지 쌓아왔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자 새로운 도전자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캐다나, 유럽 로봇 수술기 업체들이 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트랜스엔터릭스는 2006년 설립돼 다빈치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이다. 2017년 시장 진입을 목표로 제품을 준비 중이다.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메드트로닉은 2013년부터 로봇 수술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2018년 출시가 목표다. 독일에서는 로봇 팔을,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와 주요 부품을 개발 중이다. 한국에선 미래컴퍼니가 선도 기업이다. 이 회사의 복강경 수술 로봇 레보아이는 동물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6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세브란스와 함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도전자 중엔 구글 생명과학의학부와 존슨앤드존슨의 합작사 버브서지컬도 있다. 이들은 인튜이티브 서지컬 연구원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다. 구글 본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게리 굿하트 인튜이티브 서지컬 대표는 공격적으로 구글에 맞서는 중이다. 오히려 구글 직원을 스카우트한 일도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선 연봉보다도 성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우리 연구원에게 거액의 연봉 제의가 계속 들어오지만 잘 막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글=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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