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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을 전문 사진작가로 ‘희망 줌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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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활 단체 운영 사진작가 조세현
스타·유명인 찍다 소외층에 눈돌려
“교육과정 끝나면 노숙인 눈에 생기”

조세현 작가는 “소외층이 사진 작업을 해 보면서 희망을 되찾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조세현 작가는 “소외층이 사진 작업을 해 보면서 희망을 되찾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서울 광화문광장 ‘희망사진관’에서 기념사진사로 일하고 있는 김창훈(44)씨는 2년 전까지 노숙인이었다. 번듯한 무역회사 직원이던 김씨는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이혼까지 했다. 몇 년간 노숙을 하며 아무런 희망도 꿈도 찾질 못했다. 그러다 2015년 1월 희망프레임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씨처럼 132명의 노숙인이 희망프레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희망프레임은 조세현(58·중앙대 석좌교수) 사진작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노숙인 사진 전문 교육과정이다. 처음에는 6주 기초과정인 희망프레임으로 문을 열었지만, 전문과정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늘면서 지난해부터 5개월 과정인 희망아카데미를 추가로 개설했다.

조세현 작가는 2000년 초까지 스타와 유명인사 촬영으로 유명했다. 전지현·김민희·이정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발굴해 데뷔시켰고, 인기 잡지의 표지 촬영을 도맡았다. 패션사진 작가로 잘나가던 그가 소외계층으로 눈을 돌린 건 2002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천주교 신부였던 외삼촌이 경북 고령군에 있는 부랑자 수용소 ‘들꽃마을’ 원장으로 간 후 걸려온 전화였다. 부랑자끼리 가족을 맺어 생활하게 하고 있는데, 그들의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사진 한 장에 행복해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보람을 느꼈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꿈꿨던 터라 초심으로 돌아왔다는 생각도 들었죠.”

이후 그는 소외계층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대한사회복지회의 요청으로 해외에 입양 갈 아이들의 기념사진을 찍었고, 2006년에는 월드비전과 함께 기아아동 돕기 캠페인에 나섰다. 또 같은 해 장애인 운동선수들의 활동 모습을 촬영했고, 2008년에는 이주여성 친정방문 시 동행해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회 등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재단에 기부하거나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해외 입양아동 사진 촬영은 올해로 14년째 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매년 스타 한 명이 입양아 한 명을 안고 있는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여는데, 올해는 이민호·신동엽·서현진·아이오아이 등 연예인 14명이 참여했다. 조 작가는 “아기들이 보통 생후 3개월 때 입양을 가니 이 사진이 100일 사진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2012년 영국 윌리엄 왕자의 자선행사로 열린 국제 사진전 ‘어 포지티브 뷰(A Positive View)’에 참석했던 그는 사진전의 수익금 전액이 노숙인 사진 교육에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영감이 떠올랐죠. 사진은 그림이나 악기보다 쉽게 배울 수 있고 활용도가 높거든요. 사진을 통해 삶의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조 작가는 이런 아이디어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안했고, 희망프레임이 설립됐다.

수업에서는 사진 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다. 배우 이서진은 기초 관광 외국어 강사로 나섰고, 노영심은 음악과 문화의 이해를 강의했다. 마음치유학교장 혜민 스님은 문화와 인생 이야기 수업을 맡았다. 조 작가는 “5개월간 교육과정이 끝나면 변화된 그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다”며 “더 많은 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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