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홍승일의 시시각각

권력자 놀이터 된 문체부가 사는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홍승일  논설위원

홍승일
논설위원

지난해 말 한국 바둑의 본산인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 야단법석이 났다. 엘리트체육단체(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단체(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바둑이 통합체육회 산하 종목에서 슬그머니 빠진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서다.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2차관 휘하의 체육정책국이 이를 주도했다. 청와대 교감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바둑계의 갖은 설득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둑에 대한 소관부처의 속내를 읽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기원의 한 간부는 “바둑이 왜 스포츠로 육성되어야 하는지 문체부 내에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대한체육회 종목이었다가 빠지게 되면 타격이 크다. 정부 지원이 줄고, 청소년 바둑새싹들의 묘판이라 할 전국체전·소년체전 종목에 남을 명분이 없어진다.

여러 영역들 섞여 정체성 취약
바둑 하나 못 품으면 갈라서야

 김종 차관의 바둑 비호감은 대학교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둑계는 2012년 초 사업재원 마련을 위해 “바둑을 스포츠토토(경기승부 맞히기 복권) 종목에 넣어 달라”고 신청했다가 문체부에서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다. 심의를 한 사행성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서도 “바둑이 왜 스포츠로 지원을 받아야 하느냐”는 기류가 흘렀는데, 그런 감독위원 중의 한 사람이 김종 교수였다고 한다.

 바둑 이야기를 꺼낸 건 요즘 최순실 게이트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문체부의 현주소와 연관이 있어서다. ‘체육 대통령’이 바둑을 탐탁히 여기지 않은 건 바둑의 불운일 뿐이다. 또한 바둑이 그 무엇보다 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미 2009년 충분한 명분과 함께 스포츠로 공인받은 바둑을 “지원 스포츠 종목이 너무 많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백지화하려는 관료주의와 독선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문체부 몇몇 고위 관료 출신들의 설명을 들어봤다.

 “문체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의 단골 부처였다. 파워가 약한 부처의 숙명이다. 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체육·관광·공보 분야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수십 년간 문공부·문교부·문화부·문광부·문체부 등으로 개명도 잦았다. 취약한 정체성과 산만한 조직 분위기는 권력층과 외부 입김에 약한 체질을 낳았다. 장관·차관은 다른 부처 고위관료나 교수·문화예술인의 몫이기 일쑤였다. 이른바 비선실세, 문화계 황태자, 체육 대통령의 먹잇감 내지 놀이터가 되었다.”

 한 전직 관료는 문체부 장관이 선심 쓰면서 ‘쇼잉’하기 좋은 부처라고 규정했다.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정치인들에게도 딱이다.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느라 산하단체의 전(前) 정권 인사를 몰아내는 전위대 노릇을 하기도 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 예민한 곳이 문체부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이마저 희박해졌다. 예산을 무기로 체육단체 인사나 조직에 개입하고 급기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특검 수사 선두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문체부는 작금의 사태로 쑥대밭이 되면서 ‘차관의 무덤’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정관주 1차관의 사표가 26일 수리됨으로써 박근혜 정부 들어 1차관이 다섯 번이나 바뀌게 됐다. 과장급 이상 잦은 후속 인사로 조직의 안정성과 전문성이 망가졌다. 이제 공허한 문화융성 대신 진짜 문화입국의 시동을 걸어야 할 판이지만 빛바랜 부처 이미지, 추락한 사기는 언제쯤 회복될지 걱정이다. 평창올림픽도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문화와 체육을 한 지붕 안에 몰아놓은 것이 불만인 문화인도 여전히 적잖다. 이들은 1990년 출범한 독립 문화부의 이어령 초대 장관 시절을 ‘황금시대’로 회고한다. 박양우 전 문체부 차관(중앙대 교수)은 “국정 농단으로 낙인 찍힌 창조·융합에 힘을 다시 불어넣어 만신창이가 된 문화와 체육, 콘텐트를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문화와 체육의 접점에 애호가 700만 명의 우리 전통 문화이자 세계적 마인드 스포츠인 바둑이 있다. 지난 봄 알파고-이세돌 대결 이후 바둑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바둑 하나 제대로 품고 키우지 못한다면 문화와 체육을 굳이 한 지붕 아래 둘 필요가 있을까.

홍승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