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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건축엔 “나에게 도전 말라”는 권력 과시의 심리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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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호 26면

1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2 롯데월드타워 3 현대기아차 신사옥 4 만리장성 5 거창 고인돌 6 부르즈 할리파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를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생존을 위한 과시로 설명한다. 아프리카 동물의 세계를 보면 가젤은 사자 눈앞에서 껑충 껑충 제자리뛰기를 한다. 가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은 이렇게 높이 뛰고서도 사자인 네가 쫓아와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 그러니 나 잡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주변의 다른 약한 가젤을 사냥하라’는 메시지를 사자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술과 담배는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다. 그런데 그런 술 담배를 남들 앞에서 하는 이유 역시 ‘나는 이렇게 나의 몸을 혹사해도 건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가젤이나 사람이나 생존을 위해서 과시를 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본능은 건축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고대의 거석문화가 그 시작이다. 고대유적인 고인돌은 두 개의 돌 위에 거대한 바위를 얹어놓은 것이다. 정말 쓸데없는 건축물이다. 그렇다. 쓸데없기 때문에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보석들, 비싼 명품 백은 실용적이지 않다. 대신 나는 이렇게 쓸데없는 데다가 돈을 써도 될 정도로 부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담배나 명품백처럼 건축에서는 고인돌이나 영국의 스톤헨지,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같은 거석문화가 모두 권력 과시를 위한 장치다. 이런 거석문화가 가능하려면 먹고 사는 것을 하고 나서도 대형토목공사를 감행할 수 있는 재력, 권력, 사회시스템 등이 받쳐 주어야한다. 그러니 이러한 거석문화는 사자 앞에서 하는 가젤의 쓸데없는 높이뛰기나 마찬가지다. 그 건축물은 ‘나는 이렇게 힘이 좋다. 그러니 나의 권력에 도전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돌 같이 무거운 돌을 올린 건축물이 왜 권력의 상징이 될까? 필자의 생각에 거석문화는 에너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에너지 중에서도 위치에너지다. 우리는 중학교 물리시간에 높은 곳에 있는 질량을 가지는 물체는 위치에너지를 갖는다고 배웠다. 또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서로 바뀔 뿐 에너지 총량은 변화가 없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배웠다. 식으로 나타내면 mgh=1/2×mv2 이다. 선반 위의 높은 돌은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그 돌이 떨어지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높은 곳의 물이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드는 것이 이 같은 원리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반대로 높은 곳에 물건을 올려놓는다는 것은 운동에너지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고인돌이나 피라미드같이 높이 쌓인 무거운 돌은 엄청난 양의 운동에너지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만한 운동에너지를 가동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을 동원할 능력이 있고 곧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제국들은 경쟁적으로 무거운 건축물을 만들었다. 이집트왕조는 피라미드, 중국 진시황제는 만리장성, 미국은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을 세웠다. 이러한 무거운 건축물들은 그것을 만든 조직의 권력을 보여 준다. 더 무겁고 높은 건축물을 구축한 권력의 주체는 더 높이 뛰는 가젤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각 국가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무거운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정량적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계산하는 방식은 일단 각 건축물의 매스를 만들고 4m마다 부피를 잘랐다. 각 층의 매스에 평균높이를 곱해서 구한 위치에너지들의 총합이 그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라고 가정하였다. 위치에너지 계산공식에 나오는 중력가속도 g값은 상수임으로 건축물들 간의 상대적 위치에너지 비교에는 필요가 없어 계산에서 제외시켰다. 또 실제로 피라미드나 지구라트처럼 속이 꽉 찬 돌로 만든 건축물과 뉴욕의 쌍둥이 빌딩처럼 속이 사무공간으로 비워져 있는 경우는 겉모습은 같지만 실제 무게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계산의 목적은 겉에서 보았을 때 건축물이 주는 위치에너지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있기 때문에 속이 빈 상태로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오피스건물과 속이 꽉 찬 돌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를 동일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방식에 의해서 값을 구했더니 다음과 같이 나왔다. 피라미드의 위치에너지의 총합을 1로 보았을 때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은 7.4다. 재미삼아 상상해 본다면 이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제국인 미국의 권력이 이집트의 권력에 비해서 7.4배 크다고 정량화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는 이집트에 비해서 2.3배 더 큰 권력을 보여준다. ‘부르즈 할리파’는 세계최고의 높이를 가지지만 워낙에 상층부가 가늘게 올라가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낮은 높이의 뉴욕 쌍둥이 빌딩보다도 위치에너지가 절반도 안 되게 나온다. 이처럼 이 공식을 이용하면 시대와 장소가 다르지만 대표 건축물의 무게와 높이를 통해 그 건축물을 만든 권력주체의 힘을 비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대형 건축물들을 국가가 만들기보다는 다국적기업에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지어지는 대표적인 초고층건물인 롯데타워와 곧 완공이 될 현대기아차 삼성동 신사옥은 100층이 넘는 고층건물이다. 이 두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았다. 결과는 현대타워가 롯데월드타워의 3.4배 더 큰 위치에너지를 가진다. 이 두 빌딩은 각각 555m와 553m로 높이는 거의 같지만 롯데타워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매스이고 현대기아차 사옥은 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평면이 최상층까지 같은 모양으로 올라가는 직육면체 매스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사옥은 위로 올라가도 매스가 많기 때문에 현대기아차 사옥이 롯데월드타워보다 3.4배 더 많은 위치에너지를 가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두 기업의 2016년 6월 중 주식시가총액은 롯데그룹이 29조 4200억원, 현대기아차그룹은 100조 2100억원이다. 주식 총액을 보면 현대기아가 롯데의 3.4배인 것을 알 수 있다. 두 기업 사옥의 위치에너지 값과 주식시가총액의 비율이 동일하게 나왔다. 거짓말 같지만 계산해서 나온 값이 그렇다. 물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엄청난 매출액이나 영향력을 갖고도 고층건축물을 소유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이러한 기업은 ‘가젤’이 아닌 것이다. 모든 기업의 속성이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초고층 건물은 선진국보다 중국이나 중동국가 같은 후발 개발도상국에서 경쟁적으로 짓는다. 같은 이유로 초일류 기업은 권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권력을 가진 주체는 과시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너지의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한다. 공식을 살펴보면 높은 상부에 매스가 클수록 위치에너지는 커진다. 따라서 베이징의 ‘CCTV사옥’처럼 상부에 캔틸레버로 무거운 매스가 올라가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사람이 과시욕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여간 과거 고인돌을 만들던 종족의 후예들은 오늘날에도 헬스장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무거운 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유현준홍익대 건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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