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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밑천 10만원 빌리면 월 이자 3만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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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3면

3 황금의 삼각주은행의 창구 내부. 지폐를 세고 있는 직원 옆에 쌓여 있는 100달러 지폐 다발이 눈길을 끈다.[사진 DPRK360]

1 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해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화폐들.

북한에서 시장화가 확대되고 개인 상업활동이 증가하면서 자영업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독립채산제나 반독립채산제, 그리고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의 영향을 받은 기관·기업소가 증가하고 시장이 확대되며 심화하고 있다.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는 2014년부터 실시한 것으로 기업이 자기 실정에 맞게 독자적인 경영활동을 벌일 수 있게 만든 제도다. 이후 북한 주민이 창업을 할 경우 세금만 내면 자신의 책임하에 기업을 꾸릴 수 있게 됐다.


그러면 개인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초기 자본을 어떻게 마련할까. 북한에서 개인사업은 2004년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돈이 많은 개인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운영했다. 개인사업은 식당을 비롯해 오락실을 포함한 컴퓨터 상점, 비디오방, 목욕탕, 안마소, 당구장, 노래방 등 주로 서비스 업종들이었다. 최근엔 물류운송 사업으로도 확대해 트럭·버스뿐 아니라 열차와 선박까지 영역이 커지고 있다. 이런 사업을 하려면 밑천이 없는 주민들은 돈을 빌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신용거래를 통해 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은행들은 기관·기업소에 대출을 해주지만 개인에게는 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주택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사업을 하려면 불법인 사(私)금융(고리대금업)을 이용해야 한다.


사금융이 한국처럼 북한 주민들에게 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북한 돈으로 5만~10만원의 종잣돈이 있어야 한다. 통상 10만원을 돈주에게 빌리면 월 2만~3만원을 이자로 지급해야 한다. 월20~30%에 달하는 고리대금이지만 북한에서는 일반적이다. 상환기간은 3~6개월 단위로 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최근 탈북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하루 10%의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까지 등장했다”며 “배급제 붕괴 이후 사경제부문이 활성화되자 장사를 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금전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5만 달러 이상 가진 돈주 24만명”사금융은 돈주들이 주도하며, 돈주들은 사적 재산을 토대로 국유기업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북한의 건설·제조업·서비스업 활성화를 주도하면서 돈을 번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대외무역과 시장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5만~1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돈주들이 24만명 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돈주들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부터 평양과 평안남도 평성·순천 등지에서 외화벌이 일꾼들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7·1 조치는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부여하고 수익에 따른 분배 차등화,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한 경제개혁이었다.


돈주들의 계층은 다양하다. 임 교수는 “재일교포·화교를 비롯해 무역 및 외화벌이 일꾼, 마약장사꾼, 밀수꾼, 노동당 간부 등 출신성분과 직업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돈주로부터 돈을 빌리지 못한 개인은 돈주나 그의 대리인(중간상인)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직접 시장에서 판매하는 소매상 역할을 해주고 이윤을 나눠 가진다. 북·중 밀무역을 하다 탈북한 이모씨는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이는 돈주들도 있다. 돈주들은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반드시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봐가며 지급할 수 있는 능력 한도에서 빌려 주지만 사업이 실패해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의 시중 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듯이 북한도 주택 입사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고 덧붙였다. 주택 입사증은 북한 당국이 제공하는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증인데 개인간에 매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북한은 불법인 사금융을 단속하는 법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북한은 2007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수정 보충된 북한의 형법 제118조에 ‘고리대죄’를 신설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고리대를 하여 대량의 이득을 얻은 자는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강제노동)에 처해진다. 이득이 크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도 적용된다. 하지만 고리대의 기준이 불명확해 유명무실한 법이 돼 버렸다. 북한 당국은 기관· 기업소가 필요한 자금은 은행의 대부자금을 이용하도록 했지만, 기관·기업소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은행이 가진 돈이 부족해 돈주에게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2 북한 나선지역에서 투자와 외환거래를 담당하는 황금의 삼각주은행의 내부 모습.

은행서 돈 마음대로 찾을 수 없어 기피은행에 돈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한 주민들이 은행에 돈을 거의 맡기지 않아서다. 이유는 은행에 맡긴 돈을 마음대로 찾아 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진알루미늄그릇공장에 근무하다 탈북한 최소영씨는 “대다수 은행장들이 자기 은행에 저금한 돈을 장사꾼에게 자기 마음대로 높은 이자율로 빌려주고 회전시킨 뒤 여기서 나오는 이자로 먹고 산다”며 “따라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할 때 돈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에게 저축을 권장하지만 막상 은행에 돈을 맡기면 맡긴 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생겨 일일이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 이용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당국은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반응이 시원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은행 이자율이 연 3.5% 정도에 불과한데다 주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개인에게 빌려주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굳이 저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사금융의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사법·검찰·국가안전보위부 등 양질의 비공식 인적 네트워크다. 시장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돈주들은 대개 정치적 신분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들과의 연계를 통해 신변 보호를 비롯해 사업의 안정성 확보, 자본 증식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돈주와 이들과의 관계 형성과 발전은 주로 뇌물을 수단으로 이뤄지며 나중에 사업 파트너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사금융의 확산은 북한 사회 내 빈부격차를 더욱 벌여놓고 있다.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돈주들을 중심으로 부의 집중과 이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폐막한 노동당 제7차대회에 참가했던 해외 기자들은 평양을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고 표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북한 상위 1%는 점심으로 평양 주체탑 근처 독일 고급 레스토랑에서 48달러 짜리 1등급 스테이크를 먹고 9달러 짜리 아이스 모카를 먹는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하루 삼시 세끼를 걱정하는 일반 주민들과는 동떨어진 세계다.


임 교수는 “돈주와 사금융은 체제전환 초기나 경제개발 초기 과정의 필연적인 현상”이라며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로 외화 유입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사금융시장에서 국정 운영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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