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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문화가 낳은 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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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22면

[중앙포토]

요즘 중국에서 각종 업무를 처리할 때 ‘판공실(辦公室)’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식으로 직접 풀면 ‘사무실’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다. 겉으로는 업무를 위해 접촉해야 하는 높은 사람의 비서(秘書) 그룹들이 일을 보는 장소지만,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판공실’ 역시 중국의 ‘모략’이라는 문화적 요소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판공실의 비서는 우리가 각종 중국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만나야 할 ‘지체 높으신 분’의 핵심 참모 그룹이다. 중국에서 이런 비서 그룹의 위상은 매우 높다.


해당 고관의 일상 전반을 관리할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에도 모두 간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뚜렷한 일체감을 이룬다. 운명 공동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활(死活)의 이해가 일치하는 그룹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정점을 이루는 대상과 함께 그 주변의 ‘판공실’ 인맥에 밝아야 한다.


현재 중국의 권력 정점을 이루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나,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 그 밖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각 부처 장관 등도 마찬가지다. 각 분야 실세를 이루고 있는 권력자의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주변의 ‘판공실’이 어떤 비서들로 짜여 있는가를 먼저 보라는 말은 그런 연유에서 나온다.


막부·막료도 중국 전통에서 나온 말중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일정한 이해관계를 이뤄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을 ‘인마(人馬)’라고 표현할 때가 있다. 사람과 말, 직역하면 이런 뜻이다. 그러나 사람과 말은 예전 동양사회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요소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저 사람 어느 쪽 인마(人馬)냐”는 물음은 “저 친구 누구의 병력(兵力)이야”라는 물음과 같다는 얘기다.


‘판공실’에 머무는 참모 그룹이나, 각 세력을 형성하는 이들에게 ‘인마(人馬)’라는 낱말을 붙이는 게 다 같은 맥락이다. 참모(參謀)는 ‘꾀를 내는 데 동참하는 사람’이다. 사람과 말, 즉 인마는 직접적으로 병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전쟁이라는 살벌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 정착한 용어들이다. 특히 요즘의 ‘판공실’이라는 용어가 대변하는 중국식 참모의 전통은 우리가 잘 살펴야 할 대목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막료(幕僚)’가 있다. 일본에서는 한 때 막부시대(幕府時代)가 오래 이어졌다. 이에 등장하는 막료와 막부 모두 중국의 전통에서 나왔다. 사느냐 죽느냐를 다투는 전쟁의 맥락이다.


막료나 막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글자 ‘막(幕)’은 전쟁 지휘소를 가리켰다. 장수가 거처하면서 전쟁의 전반을 이끄는 사령탑이다. 그가 머물렀던 곳에 치는 장막,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텐트가 바로 ‘막’이다. 따라서 이는 요즘 군대 용어로 치자면 CP, 즉 Command Post다.


전쟁터의 장수가 머무는 텐트이자 CP가 곧 막(幕)이요, 그 안에서 함께 거처하면서 전쟁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짜는 동료들이 막료(幕僚)다. 아울러 장수와 막료들이 함께 머무는 좀 더 큰 면적의 장소를 막부(幕府)라고 적었던 것이다.


이 막료와 막부의 전통을 제대로 보여준 역사적 장면이 하나 있다. 한(漢)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사례다. 앞에서도 잠시 소개한 내용이다. 그는 한나라를 세운 뒤 각 참모들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장량(張良)을 거론하며 “장막에서 전략을 구성해 천리 바깥의 승부를 결정짓는 일에서는 장량이 뛰어났다”고 거론했다.


유방은 그 자리에서 전쟁터 지휘소, 즉 CP를 ‘유악(?幄)’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아울러 전쟁터의 전략 구성과 운용을 ‘운주(運籌)’라고 했다. 막(幕)과 모략(謀略)의 다른 표현이다. 역시 천하의 패권을 쥐는 과정에서 전략의 구성, 참모의 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내용이다.


그런 유방의 사례는 사실 대단치 않다. 그에 앞서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이 전략의 구성과 참모의 확보에 얼마나 대단한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고 또 많다.

중국의 가장 유명한 ‘책사의 고향’ 저장(浙江) 사오싱(紹興)의 현대 중국 문호 루쉰(魯迅) 생가 전경. 저우언라이는 이곳의 유명한 책사 전통을 타고 태어났다.

맹상군, 식객 도움으로 죽을 위기 넘겨요즘 ‘먹방’ ‘쿡방’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음식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이다. 그와 함께 ‘식객(食客)’이라는 말도 바람을 탔다. 그러나 이 식객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맥락의 단어에 앞서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한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때는 춘추전국시대(BC 770~BC 221년)다. 주(周)나라가 상징적인 권력의 중심을 이뤘지만 모든 세력이 잘게 나뉘어져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전쟁이 빗발 닥치듯 쉴 새 없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살아남아 승리를 거두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였다.


그런 살벌한 인문적 환경에 등장하는 그룹이 바로 ‘식객’이다. 권력이 있고, 무력을 갖춰 패권에 다가가던 실력자의 주변에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다. 실력자로부터 먹는 것과 입는 것, 생활의 여러 수요를 해결하는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바쳤다.


그런 식객은 달리 문객(門客)·빈객(賓客)으로도 불렸다. 다른 표현으로는 ‘꾀주머니’라는 뜻의 지낭(智囊)이라는 말도 따랐다. 아울러 ‘기르는 선비’라는 맥락에서 양사(養士)라는 호칭도 붙었다. 지금의 중국 권력자들에게 따라붙는 ‘판공실’의 비서 그룹, 나아가 전쟁터 사령탑의 천막을 드나들던 막료(幕僚)·참모(參謀)와 같은 흐름의 낱말들이다.

문객이나 식객은 따라서 동의어다. 아울러 막료이자 참모이며, 또한 비서 그룹의 뜻이다. 이런 문객을 많이 거느림으로써 이름이 난 사람은 전국시대 제(齊)나라 실력자 맹상군(孟嘗君·그림)이다. 그 말고도 같은 전국시대의 시공에서 문객을 많이 거느린 사람으로는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이 있다.


맹상군은 그 중에서도 이름이 가장 높다. 그가 남긴 극적인 스토리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제법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는 제나라 왕실의 공자였다. 정치적인 야심이 상당한 사람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게 몰려들었던 문객만 3000명을 크게 웃돌았다고 한다. 그 아래 몰려든 사람들의 성분도 다양했다. 전략을 다루는 참모급의 인물로부터 음양의 조화에 밝았던 술사(術士), 기묘한 꾀를 내는 책사(策士), 나아가 잔재주를 부리는 인물 등이다. 그가 당시 강력한 패자로 부상하고 있던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들린 적이 있다.


진나라에 잡혀 곧 처형대에 오를 위기의 순간을 맞았던 것이다. 그가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단 한 가지. 제나라에서 진상했던 희귀한 백색 여우 가죽을 다시 찾아다가 진나라 실력자에게 바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우의 가죽을 다시 손에 넣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를 구한 사람은 맹상군이 공을 들여 길렀던 문객이었다. 개구멍을 제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며 물건을 훔치는 데 능했던 식객이 마침내 여우 가죽을 훔쳐내 맹상군을 갇혔던 곳에서 탈출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난관이 남았다. 진나라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시간은 아직 밤중이었고, 날이 밝아야 요새의 문이 열리는 상황이었다. 그 때 또 한 사람의 문객이 나섰다. 닭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내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역시 요새의 문은 열렸고 맹상군은 마침내 진나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성어로 잘 알려진 스토리다. ‘그 내용이 참 재미나다’라고 무릎만 칠 일이 아니다. 그보다 이제는 왜 맹상군이 수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냐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인문적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침 ‘사야(師爺)’라는 단어도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근세의 중국에서 이 ‘사야’는 참모 그룹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명(明)에 이어 청(淸)나라 말엽까지 줄곧 유행을 탔던 낱말이다. 이 또한 권력자의 주변에 포진한 책사와 술사, 참모와 비서를 일컫는 말이었다.


전쟁서 이기기 위한 전략 세우고 실행중국 동남부 저장(浙江)성에 아주 유명한 고장이 하나 있다. 바로 사오싱(紹興)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황주(黃酒)로 우선 이름이 났지만, 실제 사오싱의 특산 중 가장 걸출한 것이 바로 책사 그룹이다. 사오싱의 책사는 아주 유명했고 매우 유능했다. 그 수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사오싱의 ‘사야’ 전통을 타고 태어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저우언라이(周恩來)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도와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했고, 초대 중국 총리로 지금 중국의 발전 토대를 닦은 사람이다. 그는 화려한 전략, 뛰어난 지모(智謀), 능란한 수법으로 다 유명하다.


전국시대의 수많은 식객과 문객, 전쟁터 사령탑을 드나들었던 막료, 사오싱의 ‘사야’와 현대 중국 공산당 권력 그룹의 막강한 판공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얼까. 전쟁과 온갖 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과 모략의 구성과 실행이다. 꾀와 지혜, 아울러 그 밑을 이루는 끝없는 타산(打算)의 전통도 보여준다. 중국은 그래서 우리에게 두렵고 낯선 존재다. <계속>


유광종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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