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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같지만 넘치는 에너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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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24면

어깨에 라디오를 짊어지고 흔들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뉴욕 할렘가 출신 10대 소년의 눈에 낡은 지하철 외벽을 덮은 형형색색 스프레이 페인트 그림이 꽂히듯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 또한 붓과 물감을 들고 거리로 나갈 꿈을 꾸게 되었다. 16세부터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해 이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된 존원(JonOne·53)이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벽에 적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뭘 하는 것일까. 그 모습을 지켜볼수록 함께하고 싶더라. 내 이름도 저 벽에 적히는 순간,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만난 존원은 자신의 예술 입문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2017년 2월 26일까지 열리는 그래피티 뮤지엄쇼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에 앞선 자리였다.

처음엔 개인 연습장에 이름 쓰기를 연습했다. 공책을 한 권 두 권 메우던 꼬마 예술가는 차츰 길거리에 나가 벽을 하나씩 차지해 색을 입혔고, 자연스레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그의 캔버스가 된 지하철 차량은 “도시를 관통하는 움직이는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동료 예술가의 초대로 1987년 파리로 이주한 존원은 에어프랑스·화장품 겔랑·음료수 페리에 등 세계적 기업들의 제품에 자신의 디자인을 실으며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문화예술인의 명예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수상했다.


“나는 내 작품들을 ‘추상’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막 그래피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조형적, 회화적인 것들이 유행했기 때문에 추상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내 그림을 마주한 많은 분들이 ‘작품의 의미가 뭐야?’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난 그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 내 작품은 내 인생의 기록이다. 누군가 ‘네 인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답을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낸 난장판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한 에너지를 전해주고 싶다.”


그는 서울 서예박물관 전시실에서 가로 3m, 세로 2m 정도 되는 흰 캔버스를 화려한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는 개막 전 퍼포먼스도 펼쳤다. 물감을 뜯어 캔버스를 향해 휘두르기도 하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커다란 면을 색으로 채웠다. 주어진 면적을 벗어나 전시관 벽면까지 서슴없이 물감을 뿌리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화폭에 담고자 한다는 ‘에너지’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
지금이야 유명 작가가 되어 마음껏 본인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존원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예술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계를 스스로 꾸려나가기 위해 학업과 취업의 무거운 압박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가 유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예술은 거리를 장식한 낙서들이었고,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낙서였다.


“나는 예술가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예술가야’라고 마음 먹음으로써 탄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예술가가 되는 거다. 나는 나 자신을 나타내고, 주목을 받기 위해 예술을 시작했다. 내 이름의 의미가 바로 거기서 온다. 그게 내가 존‘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의 본명은 존 앤드류 페렐로(John Andrew Perello). 발음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이름에서 굳이 ‘h’를 빼게 된 계기가 있다.


“어릴 적 뉴욕 곳곳에 낙서를 하며 돌아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로자나(Rosanna)였는데, 그 애가 항상 열차 마지막 칸을 타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승강장 맨 뒤쪽에 큰 하트와 함께 ‘존은 로자나를 사랑해(John loves Rosanna)’라고 멋지게 적어놓았다. 그런 동네방네 구애 덕분에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부모님을 처음 만난 날, 그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게다가 로자나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것도 나와 가장 친한 친구랑. 그 후 내 낙서에는 ‘존’만 적었는데, 상심이 커 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도 싫더라. 존(John) 대신 존(Jon)을 쓰기로 하고, 자존감을 얻기 위해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의 ‘원(one)’을 더했다. 세상에 존(John)은 많지만 존원(JonOne)은 나 하나 뿐이다.”


최근에는 LG전자의 스피커, 노트북 등을 디자인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됐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라는 컨셉트 아래 그래피티 디자인을 전자기기에 담아낸 그에게 이 작업은 사업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기대가 많이 됐다. 내 작업이 벽면이 아니라, 스피커나 컴퓨터 같은 것에 새겨진다는 자체만으로 예술가로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었다. 예술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 디자인이 새겨진 제품을 보고, 인터넷에 찾아보거나 전시에 한 번 와보면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렇게 예술계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벽은 높지 않다. 아주 작은 호기심도 예술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길거리 예술 넘어서는 일곱 아티스트들]
이번 전시에는 존원을 비롯한 7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흔히 연상되는 스프레이 페인팅 된 굵직굵직한 글자를 넘어 각자의 내공이 녹아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중국 서예 등 다양한 필체를 연구해 자신만의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낸 라틀라스(L’ATLAS), 스텐실 기법으로 그림을 찍어내는 닉 워커(Nick Walker), 흘러내리는 듯한 로고체의 제우스(ZEVS), 팝아트와 그래피티를 섞은 크래쉬(CRASH), 콜라쥬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는 쉐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사진과 스트리트 아트를 결합한 제이알(JR)이 참가했다. 존원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길거리 예술가, 기물 파손자, 담벼락 화가라고 부른다.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관객들이 우리를 ‘길거리 작가들’이 아니라, 각각의 아티스트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낙서로 공공 기물 파손 혐의를 받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예술과 무법의 경계를 수없이 논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시대에 그래피티가 미술관, 그것도 정갈함이 특징인 서예를 걸어놓던 박물관의 벽면에 번듯하게 걸리게 됨은 예술계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을 알리는 의미일 터다.


전시 기획을 맡은 미노아아트에셋 최환승 대표는 “미술에서도 새로운 장르가 생길 때마다 기존 업계나 주류 사회의 냉소와 비난을 받곤 했다”며 “새 장르의 선두에 서서 편견과 싸워온 작가들이 역사에 남게 된 것이고 이번 전시는 건물 외벽이나 지하철에서 목숨 걸고 작업하던 이들이 최고의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게 됐다는 의의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


글 손지혜 코리아중앙데일리 인턴 기자 shon.jihy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예술의전당 서을 서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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