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학생과 야당의원들|허남진<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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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하오 학생들이 이틀째 농성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명동성당을 찾아가 빵과 음료수를 전하고 온 민주당 소속 의원과 당원들은 상당히 착잡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시위현장에 가까스로 접근해 학생대표를 만나 찾아온 뜻을 밝히니 처음에는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들었다..
『우리당에서 지금 대표단이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을 찾아갔어요. 여러분들의 안전귀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곳을 민주화의 마지막 해방구로 잡았읍니다.…신경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귀가를 하려면 요청하겠읍니다.』
이때 앞줄에서 시외를 주도하던 한 학생이 끼어들었다.
『착각하지 마시오. 우리는 비타협적으로 싸웁니다. 통일민주당을 위해 싸우는게 아니고 역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겁니다.』
자진해산에 의한 무사귀가 쪽으로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학생들을 설득해 보겠다던 민주당측의 당초 계획은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수 있는지… 씁쓸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의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또 데모학생들과 경찰 사이의 협상을 중재하려고 나섰던 박용만부총재 일행도 손을 들고말았다. 학생들의 귀가 보장 해산 요청을 들고 내무부를 찾았던 이들은 뾰족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재 노력과는 별도로 시외의 양상은 격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민주당의원들이 끼일 틈은 없었다.
6·10대회에서 전에 없던 시민의 박수갈채를 받고 그들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신했던 민주당이었다.
『어느 때보다 국민참여와 지지가 높아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민심이 현정권을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했다』면서 매우 고무돼 있던 터였다.
그러나 하루 다음날 명동시위대의 이같은 냉소적인 반응은 무엇일까.
6·10규탄대회가 비록 전에 없는 참여도와 호응도를 끌어낸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야당이 이것을 곧 그들의 승리로만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민주당의원과 시위학생들간의 어색했던 한 장면은 결국 오늘의 우리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 정치권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 같다.정치가 수렴할수 없는 소리들이 큰덩어리로 쌓여간다는 느낌이었다. 그 덩어리가 너무 커지기 전에 정치권이 제구실을 할수 있는 기능 회복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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