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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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처」 수상을 보고 독재자라고 삿대질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총선에서 그는 3선에, 전후 영국의 최장수 수상이 되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장기집권자가 된 셈이다.
연수로는 8년째, 임기로 치면 92년까지 13년간 집권이 가능하다. 물론 불신임을 받을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있지만-.
영국에선 너무도 당연한 이런 일들이 우리에겐 도무지 신선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뭔가.
「대처」의 정치 역정은 그야말로 산전수전이 많았다. 1979년 그가 수상이 되어 떠맡은 영국은 『유럽의 병자』였다. 사람들은 일하기보다 놀고 먹기를 좋아하고 노조는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만 했다.
그에 앞서 1975년 그가 보수당 당수가 된 것도 넉넉한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1차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못해 2차투표까지 했고, 그때의 표도 절반에서 7표 더 얻었을 뿐이다.
수상이 되고나서 그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비인기 품목들이었다. 「작은 정부」를 위해 공무원의 봉급을 동결하고, 무턱대고 임금만 올려달라고 떠드는 탄광을 아예 문닫아 버렸다. 긴축재정을 위해 공공 교육예산을 줄이자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는 수상에게 으례 주게 되어 있는 「명예박사」학위의 수여를 거부했다. 실업자가 득실거려도 긴축재정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리비아와 미국이 으르렁거릴때 유럽의 자유국가들은 모두들 미국에 등을 돌렸지만 「대처」만은 미국편을 들었다. 미국 전투기가 영국 영토에 내려앉는 것을 허용했다.
그런 「대처」는 수상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왔고 앞으로 5년은 더할수 있는 티켓을 받아냈다.
「대처」의 비결은 뭔가. 한마디로 민주주의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책을 가진 정당은 언제나 선거에 이기게 마련이다.』1979년 수상이 되고나니 타임지(미국)와의 인터뷰에서 「대처」는 벌써 그런 말을 했었다.
「성공적인 정부」란 그의 말을 빌면 『듣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잘 해내는 정부다. 국민으로부터 듣는 자세는 국민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일수있는 정책을 세울수 있게 한다.
민주주의는 하늘 아득히 구름 위에 있는 제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듣는 역할」을 잘만 하면 그것으로 민주주의는 충분하다. 「대처」가 최루탄 없이도 장기집권을 할수 있는 비결도 바로 그런 평범한 민주주의의 실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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