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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담뱃갑에 폐암·후두암 환자 사진…이래도 피울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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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3일부터 생산되는 담뱃갑은 국산·외국산 관계없이 앞·뒷면 상단엔 흡연 폐해를 알리는 10종의 경고그림이 담긴다. 편의점 등 소매점에선 기존 재고가 소진되는 내년 1~2월 이들 담뱃갑이 진열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나올 ‘조기사망’ 경고그림을 합성한 담뱃갑 사진.

23일부터 생산되는 담뱃갑은 국산·외국산 관계없이 앞·뒷면 상단엔 흡연 폐해를 알리는 10종의 경고그림이 담긴다. 편의점 등 소매점에선 기존 재고가 소진되는 내년 1~2월 이들 담뱃갑이 진열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나올 ‘조기사망’ 경고그림을 합성한 담뱃갑 사진.

회사원 이성표(30)씨는 지난 9월 초 마카오 여행을 갔다가 담배를 사기 위해 면세점에 들렀다. 틈날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라서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저렴한 면세점 담배를 보루(20개비짜리 10갑)로 사오곤 했다. 그런데 이날 별생각 없이 집었던 담뱃갑 포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발이 검게 썩어 들어간 흡연 폐해 경고그림이 큼지막하게 부착돼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기사로 접한 적은 있어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사오긴 했지만 경고그림을 보면 아무래도 담배 피우기 꺼려질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내일부터 흡연 폐해 경고그림 부착
아기 향하는 임신부 담배연기 등
10종류 그림 담뱃갑 상단에 넣어
전자담배에도 중독위험 경고그림
실제 시중에 풀리는 건 1~2월께
일부선 “혐오감 줘, 흡연자 인권침해”
“더 수위 높고 크게 넣어야” 주장도

우리나라도 23일부터 모든 담뱃갑에 흡연 폐해를 알리는 경고그림이 부착된다.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후두암 환자, 아기로 향하는 임신부의 담배 연기 등으로 표현될 경고그림은 뇌졸중·폐암·성기능 장애·피부노화 등 열 가지 종류의 폐해를 담는다. 위치는 시선이 많이 향하는 담뱃갑 상단이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대표적인 비(非)가격 금연 정책 중의 하나다. 지난해 6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이 확정됐다. 2002년부터 열한 번이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뒤늦게 결실을 보았다. 가격을 조절해 흡연율을 낮추려는 정책은 먼저 시행 중이다. 지난해 1월부터 한 갑에 통상 2500원이던 것이 4500원으로 올랐다. 그 결과 담배를 찾는 흡연자들의 손길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5 국민건강 영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지난해 기준 39.3%로 전년 대비 3.8%포인트 감소했다. 담뱃값 인상 등의 영향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는 경고그림 부착 시행에 따라 이러한 금연 움직임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에 따라 23일 이후 반출되는 모든 담배에는 경고그림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부터 곧바로 편의점이나 수퍼마켓에서 경고그림이 부착된 담배 제품을 보긴 어렵다. 실제로 시중 소매점에서 경고그림을 볼 수 있는 시기는 내년 1월 말~2월 초로 예상된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담배 재고가 소진돼야 하기 때문이다. 권병기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통상적으로 담배가 제조된 이후 편의점 등으로 내려가기까진 한 달 이상 걸린다. 잘 팔리는 브랜드는 이르면 1월 말부터 경고그림이 부착된 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제도 시행과 실제 유통 시기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경고그림 표기 담배를 우선 판매하는 가게를 지정하기로 했다. 국민에게 시행 시기를 알리는 차원에서 여의도·서울역·광화문 등 서울 도심 여섯 곳에 소매점을 하나씩 정하고, 경고그림이 인쇄된 일부 제품을 진열·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규정상 경고그림은 담뱃갑 앞·뒷면 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경고문구까지 포함하면 담뱃갑의 절반 이상을 채우게 된다. 또 경고그림 10종은 2년 주기로 교체해야 한다. 기존 그림을 오래 보면 익숙해져 흡연율 감소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담뱃갑 앞면에는 경고그림 내용과 연결되는 경고문구가 함께 표기된다. 예를 들어 폐암 사진 아래에 ‘폐암의 원인 흡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식이다. 뒷면에는 ‘담배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명시된다. 옆면에도 ‘타르 흡입량은 흡연자의 흡연 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 표기된다. 담뱃갑의 모든 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찾는 궐련(일반 담배)에만 경고그림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최근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는 전자담배·씹는 담배·물담배·머금는 담배에도 경고그림이 부착된다. 전자담배는 ‘중독위험’이란 별도 이미지, 씹는 담배 등 3종에는 각 1개의 경고그림이 부착된다. 궐련과 마찬가지로 제품 앞·뒤·옆에 모두 경고문구가 표기된다.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담배도 시중에서 파는 제품과 똑같이 경고그림이 들어간다.

일부에선 경고그림이 혐오감을 준다고 반발하기도 한다. 암 수술 장면이나 구강암 환자의 모습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흡연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홍관(국립암센터 교수)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은 “암 환부 등이 드러난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이 끔찍한 게 아니라 담배를 피워서 그런 병에 걸리는 게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고그림 목적 자체가 담배의 폐해를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므로 오히려 수위를 올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시행 과정에 복병도 있다. 매출 감소를 우려한 편의점 등이 경고그림을 가리려고 현재 진열장 하단에 놓인 가격표를 상단으로 올리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다. 법적 제한이 없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진열장 구조 변경을 통해 경고그림을 가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내년 중에 경고그림을 가리는 진열장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담배회사들이 23일 이전에 생산량을 대폭 늘려 경고그림 없는 제품의 재고를 쌓아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복지부는 이달 초 KT&G 공장 등을 직접 확인한 결과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인 현장 점검이 이뤄지지 않아 생산량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권병기 과장은 “담배 업계에서도 협조 의사를 밝힌 만큼 재고가 급작스레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기획재정부 등과 협력해 업계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금연 전문가들은 경고그림 시행을 계기로 금연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홍관 회장은 “국민들이 잘 모르는 췌장암·백혈병 등을 포함해 20종까지 경고그림을 늘려야 한다. 또한 청소년 흡연을 줄이기 위해 소매점의 담배 광고·진열을 아예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단 2년간 경고그림을 시행해 본 뒤 좀 더 수위가 높고 면적이 큰 그림을 넣는 식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영국·뉴질랜드처럼 담뱃갑에 화려한 광고와 색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플레인 패키징(plain packaging)’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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