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달리는 두 기관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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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두개의 기관차는 정면으로 층돌하고 말것인가. 민정당 전당대회와 야권의 규탄대회가 동시에 열리는 10일을 목전에 두고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으나 결국은 무위로 끝난채 이제 층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는 6·10 규탄대회의 중지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김총재의 회견을 통해 4·13 조치 및 전당대회를 취소하라는 요구를 되풀이했다. 여야 모두 상대방에게 일방적 양보를 요구할뿐 어느 한쪽도 물러설 기미는 도무지 없다.
갑호비상에 돌입한 경찰은 전국에 걸쳐 검문검색을 실시했고, 민추협과 대학에 대한 전격 수색을 했다. 야권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가택에 연금되었다.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삿대질은 눈에 띄어도 스스로를 자성하는 빛은 어느 쪽이건 찾아보기 어렵다.
왜들 그러는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이된 마당에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조차 피곤하기만 하다.
그동안 난국을 풀기 위한 갖가지 제안, 충언, 고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 뿐 아니라 각계 각층에서 광범위하게 나왔다. 아주 구체적이고 합리성을 띤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일방통행식의 독선이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정치는 우리가 당면한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며, 그것은 정치권의 전유물일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잘 교육받고 정치의식도 고도화된 중산층이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급박하게 돌아가도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들 두터운 중산층이 중추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정치는 이들 중산층의 여망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난국을 풀 수 있는 대답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한대로 국민의 여망은 안정 속의 변화다. 2·12 총선 결과는 이러한 국민적 욕구를 적나라하게 표출했다.
정국이 지금처럼 엉키고, 뒤틀리고, 혼돈을 거듭하는 것은 결국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데서 연유된다고 본다.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설혹 규탄대회가 공권력에 의해 「원천봉쇄」된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인 것이다. 물리적으로 규탄대회가 무산된 가운데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다고 해서 그의 순탄한 전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변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야권의 규탄대회에 일부 불순세력의 편승을 엄중히 경계할 것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대다수 국민들은 폭력이나 급진적인 행동은 절대로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6·10」이 여야간에 새롭고 알맹이 있는 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인 국민의 뜻을 떠나서 정치가 성립될 수 없다는 그 명백한 원리는 누구도 외면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금년 들어서만 「2·7」 「3·3」에서「6·10」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강행과 저지의 악순환을 되풀이 경험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뼈를 깎는 자성을 한다면 그 속에 난국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잡히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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