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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깎는 아픔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권력의 권위와 도덕적 공신력을 시험하는 박군 고문치사범은폐, 조작사건 수사결과가 대검에 의해 발표됐다.
박군이 공권력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한지 장장 1백30여일만에 공개된 「축소조작」사건은 치안본부 박처원치안감등 고위 경찰간부들이 가증스런 범죄에 당초부터 깊숙이 간여한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2일만에 끝날 수 있었던 수사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4개월만에 진상이 드러난 「수사의 허상」도 개탄스럽지만 정의구현을 구호로 외쳐온 경찰수뇌진의 일원이 반도덕적 배신행위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 앞에 경악할 따름이다.
이들이 법단에서 단죄될 죄명은 기껏해야 직무유기와 범인은닉 정도가 고작이겠으나 그동안 국민과 국가와 정부에 끼친 해독은 형언키 어려울 만큼 크다.
국민을 격분시키고 실망케 했으며 국위를 내외에 실추시켰고, 정부와 공권력의 도덕성이 만신창이가 되게 했다. 더구나 우리가 추구하고 존중하는 공동체의 존립기반인 법과 양심과 질서와 정의의 가치관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서울지검이 축소조작 사건을 수사할 때만 해도 경정급 2, 3명만 구속하겠다던 사건이 어떤 경위로 2일만에 치안감까지 구속하기에 이르렀는지는 모르나 이번 대검의 수사가 진상의 전부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 보강수사로 미진한 구석이 보완될 것으로 보이나 천주교 사제단이 서울지검의 수사가 한창일 때 『또 숨기고 있구먼…』이란 말이 또다시 나오지 않길 바란다.
박군 사건발생 당시 치안최고책임자까지 환문한 이번 대검의 수사는 검찰이 놓인 위상으로서는 어느 정도 성의를 다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은폐, 조작사건의 전모이고 실체적 진실인지는 당장 단언키 어렵다. 설사 이번 수사 결과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건의 전부라 하더라도 국민이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이는 검찰이 형사소추에 필요한 범죄구성 요건에만 초점을 맞추어 들추어내는데 급급했고, 그밖의 수사는 주력하지 않은데서 국민의 의혹이 남아있을 여지는 없지 않다.
그러나 검찰이 있는 그대로를 밝힐 대로 다 밝혔는데 국민이 의혹을 씻지 않고 있다고 불평할 입장은 못된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검찰수사의 불신을 낳게 한 장본인은 국민 아닌 수사주체였기 때문이다. 권양 사건을 비롯해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 범양사건 등 최근에 있은 대형사건 수사만 해도 국민으로 하여금 최악의 수사불신을 낳게 하지 않았는가.
이번 박군의 경우도 「탕」과「억」의 어이없는 역리에서부터 검찰초동수사를 포기한 이유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검찰이 경찰의 축소조작 사실을 짐짓 인지했으면서도 3개월간이나 비밀로 묵혀 두었다가 사제단 폭로가 있고서야 처음엔 부인하다 뒤늦게 3명을 추가 구속함으로써 던져준 경·검 유착인상도 불식하지 못했다.
더구나 치안감이 주도한 조작사건을 직속상관인 치안본부장이 과연 몰랐을까하는 의문도 숙제로 남는다.
따라서 대검 수사결과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기했고 신뢰성을 추인받기 위해서는 대한변협과 국회국조권조사가 밑받침되어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여당은 그동안 수사중인 사건에 국조권 발동이 불가능하다고 우겨왔는데 수사가 일단락 되었으니 국조권 발동이 가능하지 않는가.
이번 사건은 정부와 공권력 행사자에게 뼈를 깎는 아픔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진실은 어떤 힘이나 꾀로도 사장시킬 수 없다는 것과 우리 국민이 결코 어제의 국민이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또 호미로 막을 수 있는걸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귀중한 교훈도 남겼다. 이번 교훈을 거울삼아 공권력은 공명정대하게, 정치는 정직하게 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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