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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빌딩도 실거래가 공개, 바가지 쓸 일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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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30여 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이모(60)씨는 올해 초 작은 건물을 하나 사기로 마음 먹었다. 노후 대책을 위해서다. 모아둔 재산에다 빚을 조금 내 건물을 산 뒤 세를 받을 요량이었다. 문제는 건물 시세였다. 정보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해당 지역 중개업자 등을 수소문한 끝에 대략적인 시세를 확인한 뒤 건물을 매입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뒤 그는 건물을 수천만원 비싸게 주고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적정 가격이 얼만지 알 수 없어 바가지를 쓴 것 같아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국토부 오늘부터 홈페이지 가동
깜깜이 거래 피해 사례 줄어들 듯
지번·건물명은 공개 안 해 아쉬움

앞으로는 이씨처럼 ‘깜깜이 거래’로 인한 피해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상가와 오피스 건물의 실거래 가격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15일 오전 9시부터 상업·업무용 부동산의 실거래 가격을 홈페이지(http://rt.molit.go.kr)와 모바일 앱에 공개한다고 14일 밝혔다. 주택·오피스텔·토지에 이어 실거래가 공개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공개 대상은 거래신고제도가 도입된 2006년 1월 이후 매매 신고된 전국 상업·업무용 부동산 94만여 건이다. 여러 사람이 소유한 집합 건축물(호·실별로 구분등기된 건물) 거래가 66만여 건, 그 외 일반 건축물이 28만여 건이다.

부동산 실거래 신고 제도에 따라 상업·업무용 부동산 실거래가 역시 계약체결 후 거래 당사자나 중개업자가 60일 안에 신고해야 한다. 정보 공개 항목은 거래금액, 건물 소재지, 용도지역, 거래일자, 면적, 층수 등이다. 15일 이후 실거래 정보는 신고 다음날 공개된다.

서울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사옥.

서울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사옥.

지난 10년간 가장 비싸게 거래된 상업·업무용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9만7260㎡ 규모의 옛 한전 본사다. 2014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이 10조5228억원에 사들였다. 2007년 8월 9600억원에 거래된 서울 남대문로 5가 13만2806㎡ 규모의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가 뒤를 이었다. 실거래가 3위는 올해 6월 거래된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6831억원)이 차지했다. 이들 건물을 포함해 실거래가 상위 10위는 모두 서울에서 나왔다. 서울 외 지역에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프라자 분당점(3748억원), 정자동 분당서울대병원 HIP 연구동(2421억원), 부산 해운대구 우동 홈플러스 센텀시티점(1623억원)의 실거래가가 높았다.

상업·업무용 부동산의 실거래가 정보는 상가·오피스 건물 거래 시 중요한 참고자료다. 지금까진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다. 민간 부동산정보회사들이 관련자료를 수시로 발표하고 있지만, 일부는 실제 가격과 차이가 나고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마저도 대개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굵직한’ 건물이었다. 김수상 국토부 토지정책과장은 “비싼 건물 외에도 서민이나 소상공인이 창업 또는 투자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거래금액이 적은 건물의 실거래가 정보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 반응은 엇갈린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더 대표는 “실거래가가 공개되면 가격 조작 등이 어려워지고 소비자가 정확한 가격 정보를 알고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의 지번이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2014년 거래된 한국전력 본사의 경우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제3종 일반주거지역, 업무시설, 9만7260㎡’ 정도만 공개된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상가·오피스 건물은 개별 물건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정확한 위치를 모르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명 등을 확인하려면 소비자가 직접 수수료를 내고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떼어 봐야 한다. 동·호수를 뺀 단지 이름과 전용면적, 층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와는 체감 상 차이가 있는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부 지번이나 건물명을 공개하면 개인정보를 알리는 측면이 있다”며 “추후 실거래가 시스템이 안정되면 좀 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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