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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46> 시카고와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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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구스 아일랜드 양조장.

시카고의 구스 아일랜드 양조장.

가보지 않은 도시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은 음악 일 수도, 영화 일 수도 있다. 혹은 한 잔의 맥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내게 시카고는 1980년대를 주름잡던 밴드 시카고의 도시였다. 오래전 사촌 언니가 들려준 시카고의 앨범 중 ‘Take me back to Chicago' 가 뇌리에 콕 박혀버렸다. 시카고에 데려가 달라고 나직이 속삭이다가, 점점 시카고를 향해 달음질치는 듯한 빠른 템포가 마음에 들었다. 덩달아 내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시카고에선 삶이 자유롭다는 노래 가사 같은 도시를 꿈꾸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가 본 적도 없는 시카고가 마냥 좋았다.

맥주 업계 최초로 버번 배럴 에이징을 선보인 구스 아일랜드 양조장의 배럴 룸.

맥주 업계 최초로 버번 배럴 에이징을 선보인 구스 아일랜드 양조장의 배럴 룸.

우연히 ‘구스 아일랜드IPA(Goose Island IPA)’를 맛본 후엔 시카고가 더 좋아져 버렸다. 구스 아일랜드는 1888년 시카고의 소규모 양조장 겸 펍으로 시작해, 시카고에서 성장한 맥주다. 시카고 강에는 ‘거위 섬’이란 뜻의 구스 아일랜드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에서 양조장을 시작해 ‘구스 아일랜드’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로고에도 거위가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 섬에 거위가 많이 산단다.

구스 아일랜드IPA는 홉의 향이 화사하게 피어나면서도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인디언 페일 에일이었다. 오래전 즐겨듣던 시카고의 노래처럼 편안한 느낌이랄까. 한낮의 야구장에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시카고에 가면, 리글리 필드 야구장에 앉아 구스 아일랜드 IPA를 홀짝이며 시카고 컵스(Chicago Cubs)를 응원해야지... 라는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버번위스키를 만든 배럴에서 숙성시켜 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 버번카운티.

버번위스키를 만든 배럴에서 숙성시켜 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 버번카운티.

1988년 구스 아일랜드 창립자 존 홀(John Hall)이 가장 먼저 만든 맥주는 ‘혼커스 에일(Honker's Ale)’이다. 그가 영국 여행 중 마신 맥주 맛을 잊지 못해, 그 맛을 시카고에서 재현한 결과물 이었다. 한 번의 여행이 그에게 맥주에 대한 꿈을 불어넣은 셈이다. 1990년에는 구스 아일랜드 IPA를, 1992년에는 버번카운티(Bourbon County)를 선보였다. 버번카운티는 맥주 업계 최초로 ‘버번 배럴 에이징(Bourbon Barrel Aging)' 방식으로 만든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다. ‘위스키 배럴에 맥주를 숙성시키면 버번위스키의 풍미가 맥주에 녹아들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시도였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배럴 에이징‘을 하는 소규모 양조장이 흔하지만, 당시 버번위스키 양조에 사용했던 배럴에 맥주를 숙성시켜 끌어낸 새로운 맛과 향은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다. 참고로, 임페리얼 스타우트란 스타우트 맥주의 알코올 도수, 홉, 향 등을 더욱 강하게 만든 진하고 독한 맥주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즐겨 마셨다고 해서 임페리얼 스타우트란 이름이 붙었다. 버번 배럴에 이어 와인 배럴 숙성 등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온 구스 아일랜드는 현재 1,700에이커의 홉 농장에서 홉을 직접 재배하고, 15종 이상의 효모를 배양해 다양한 맥주를 만드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서울 강남에 오픈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전경.

서울 강남에 오픈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전경.

그런 구스 아일랜드가 서울 강남에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Goose Island Brewhause)’를 연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시카고 밖에 양조 시설이 있는 브루하우스을 선보이는 것은 서울이 처음이라고 했다. 1~2층에 반짝이는 양조 시설과 오픈 키친, 루프 톱 테라스까지 갖춘 300석 규모도 근사했지만, 갓 만들어 신선한 구스 아일랜드 맥주를 무려 26가지나 맛볼 수 있다는 게 반가웠다. 시카고에는 없는 서울만의 양조법으로 만든 맥주도 곧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오크통을 갖춘 배럴 룸이 인상적이었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서울에선 배럴 룸을 라운지로 꾸며 그 안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서울에선 배럴 룸을 라운지로 꾸며 그 안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자,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큰 배럴 에이징 장비을 갖추고 있어요. 지금은 벨기에서 야생 효모를 공수해와 만든 람빅(Lambic)을 숙성 시키는 중립니다. 막걸리 항아리가 보이나요? 실험적인 시도지만, 맥주에 막걸리 효모를 이용하거나, 막걸리 항아리에 숙성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볼 계획입니다. 기대되죠?”

지난 8 년간 미국 시카고, 호주 시드니 등에서 양조 경험을 바탕으로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맥주를 책일 질 필립 랭크모어 (Phillip Rankmore)가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구스 아일랜스 브루하우스에선 맥주에서 접목시킨 다양한 메뉴도 맛볼 수 있다.

구스 아일랜스 브루하우스에선 맥주에서 접목시킨 다양한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셰프가 맥주의 맛과 향에 맞춰 구성한 메뉴도 흥미로웠다. 와인 배럴에서 숙성시켜 섬세한 과일향의 풍미를 지닌, 벨기에식 세종(Saison), ‘소피(Sofie)’에는 ‘부라타 치즈와 절인 토마토’를 곁들이면 치즈의 깊은 맛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호스퍼 오븐(josper oven)에서 구운 등심을 먹을 땐 몰트 맛이 강한 혼커스 에일을 마셔주면 끝 맛이 더 상쾌하게 느껴진단다.

맥주 제조되는 과정과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맥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2층.

맥주 제조되는 과정과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맥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2층.

시카고는 아니지만 시카고 같은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2층에 앉아 소피, 포 스타 필즈, 혼커스 에일을 차례로 시음하며 시카고 여행을 꿈꿨다. 마지막 잔으로 버번 카운티를 맛본 순간 마음은 이미 시카고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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