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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벤트’ 사장님들 “수익 줄어도 감동 커져 남는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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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9일 부산 해운대구 109호텔은 51개 객실을 고객에게 무료 제공했다. 울산 남구 달동의 ‘조개잡이어판장’은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가 구속된 지난달 3일부터 소주·맥주를 원가에 판매 중이다. 이들 업소 대표는 “수익은 줄었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에게 받은 감동과 위로가 더 컸다”고 입을 모았다. 업소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109호텔 이은호(35)대표

109호텔 이은호 대표.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고생한 시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109호텔 이은호 대표.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고생한 시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왜 객실 무료 이벤트를 했나.
“국민이 하야를 바라고 나와 직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가결 여부를 떠나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이 날짜를 국민이 기억해 달라는 의미에서 지난 9일 이벤트를 했다.”
장삿속으로 비칠 수 있다.
“장삿속으로 비칠까봐 탄핵 이벤트를 하기 전후 언론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이벤트 홍보용 배너·현수막도 이벤트 다음날 투숙객이 체크아웃하고 모두 없앴다. 홍보를 원했더라면 현수막을 며칠이라도 더 걸어뒀을 것이다.”
고객 반응은 어땠나.
“지난 9일 점심시간에 이벤트를 공지하자 1시간30분 동안 700여 통의 전화가 왔다. 예약은 오후 2시 전에 모두 끝났다. 9일 이전에 예약한 고객이 낸 예약금은 모두 현금으로 돌려줬다.”
탄핵안 가결 당일 호텔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LED촛불을 나눠주자 고객들은 오후 9시 각 객실 앞에 촛불을 켜놓고 탄핵안 가결을 자축했다. 호텔 프런트에 ‘국민의 목소리 전달함’을 두자 고객들은 “국회가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달라” “세월호 사고를 재수사하고 마무리하라”는 의견을 많이 냈다. 이 메시지를 정리해 국회의원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대통령 지지자의 항의는 없었나.
“지난달 대통령 하야 때 객실을 무료제공하겠다고 밝힌 날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됐다. 지난 9일에는 박사모 회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호텔로 찾아와 이벤트 배너를 발로 차고 욕을 한 뒤 도망갔다.”
기억에 남는 사연은.
“객실료를 안 받자 프런트에 돈봉투를 던지고 간 고객이 있었다. ‘밝은 미래를 만들기 바랍니다’라고 적은 봉투에 5만원이 들어있었다. 이 돈은 고객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낼 생각이다. 또 높은 등급의 객실 예약자가 갓난아기 등이 있는 가족을 위해 낮은 등급으로 흔쾌히 옮겨줬다. 평소엔 불가능한 일이다. 이날 투숙객 150명이 준 감동은 하루 700만원의 수익보다 더 컸다.”

◆조개잡이어판장 김영섭(40)사장

조개잡이어판장 김영섭 사장.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고생한 시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개잡이어판장 김영섭 사장.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고생한 시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소주·맥주를 1400원과 1800원에 판매하게 된 계기는.
“장사를 하느라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탄핵 이벤트로 대신하고자 주류를 원가판매 하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오고 나서 서민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지난해 담배·소주 값이 오르더니 각종 세금도 눈에 띄게 올랐다. 지난 7월쯤엔 아무런 예고 없이 쓰레기종량제봉투 값이 2배로 뛰었다. 야금야금 서민 주머니를 털어가는 정책을 보고 분노하던 와중에 최순실 사태가 터졌다. 탄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원가판매로 손실이 클 텐데.
“지난달 3일 이후 한 달 동안 700만원 정도 순이익이 줄었다. 매주 촛불집회에 나가는 시민들 노고에 비하면 이 정도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순실 사태로 답답하고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탄핵표결을 이끈 시민에게 이렇게나마 보답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탄핵이벤트는 언제까지 하나.
“박 대통령이 탄핵당할 때까지 계속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이런 이벤트를 보면서 의지를 모아줬으면 좋겠다. 국민이 금방 까먹으면 국회나 정권은 또다시 국민을 개·돼지 취급할 것이다. 이벤트를 계속해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업소 홍보와 장삿속 아닌가.
“그리 비칠까봐 걱정하지 않은 게 아니다. 장삿속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홍보할 수 있다. 탄핵 이벤트를 지금처럼 길게 할 수 있겠나.”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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