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북 인권 정식안건 채택…실명 거론하며 김정은 정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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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9일(현지시간) 북한의 잔혹한 인권 유린 상황을 정식 안건으로 토의했다. 이번에도 북한의 맹방인 중국은 안보리가 개별 국가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안보리는 표결을 통해 찬성 9표, 반대 5표, 기권 1표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했다.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다룬 것은 2014년 이후 3년 연속이다. 또 2006년 이후 지난 10년간 안보리가 개별 국가의 인권 상황을 토의한 것은 북한이 유일하다.

유엔 미 대사 “인권 침해 책임자
처벌 안 받는 상황 지속 안 될 것”
인권 유린, 체제 문제로 확대 시사

이날 안보리 논의는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 압박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회의에선 김정은의 실명까지 거론됐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미 재무부가 지난 7월 김정은을 인권 유린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을 언급하며 김정은을 비롯한 신규 제재 대상자 11명의 이름을 모두 불렀다.

파워 대사는 “우리는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인권 침해의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며 “그들이 공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이 오면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도 강경해졌다. 조태열 유엔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김정은의 실명을 거명하진 않았으나 ‘북한 지도자’라고 세 차례나 언급했다. 조 대사는 “북한 지도자는 오로지 체제 유지만을 위해 공포 정치를 시행하고 있고, 헐벗은 주민의 민생은 외면한 채 가뜩이나 희소한 재원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 지도자는 아마도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북한 지도자’ 거론에 대해 “북한 인권 문제는 단순한 인권 문제가 아니라 북한 체제와 리더십이라는 큰 틀 속에서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인권 문제의 초점이 김정은과 북한 체제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도 북한 주민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 ‘북한 지도자의 전적인 통제하에 있는 기관들’에 의해 자행돼 왔음을 적시했다. 한·미·일·유럽연합(EU) 등이 아직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콕 집어 얘기하지는 않고 있지만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인권단체인 NK워치와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북한 인권 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이 단체들은 “ICC가 북한에 대해 수사를 거부하거나 북한에 대한 사법권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ICC가 반인도범죄 가해자들에 대해 침묵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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