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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교 공백 없다"지만…내년 상반기 현재까지 잡힌 정상외교 일정 '0'

중앙일보

입력

내년 상반기까지 잡힌 정상외교 일정 수가 11일 현재 ‘0’인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된 정상의 해외순방 일정은 없다”며 “내년 첫 다자 정상회의는 독일에서 개최 예정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라고 말했다. 독일 G20 정상회의는 내년 7월7일로 예정돼있다. 그 전까지 ‘외교의 꽃’이라고 불리는 정상 외교 일정이 확정된 게 현재까지 전무하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외교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상반기 정상 순방 일정이 없다는 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실무적으로 확정이 된 것이 없다는 의미”라며 “(정상외교 일정은) 관례적으로 1월말 경에 확정한다. 연말연초라 확정적으로 말씀 드릴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례를 감안하더라도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정상외교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지 아직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정상외교에 불확실성의 그늘이 드리워진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우선 연내 개최 예정이었던 한일중 정상회의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해당 업무를 담당해온 외교부 당국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준비 시간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금년 안 개최는 어렵다는 입장을 의장국인 일본이 표명했고, (다음)주초에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연기 이유는 중국 측이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한ㆍ일 정부의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이달) 19~20일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진행돼 왔지만 중국 측이 지난주까지 (참가 여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고, 지난주 회담 준비를 위해 필요한 부국장 회의 개최를 추진했으나 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일본 측도 금년 개최가 어렵게 된 것은 한국의 국내 정세 때문이 아니라 중국측 입장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은 한ㆍ중 및 중ㆍ일 양자 관계의 갈등 문제도 있으나 박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한국의 정치 상황도 고려된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정부는 우선 “외교공백은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유럽연합(EU)이 조만간 대북 독자제재에 나설 것이며 이는 북한이 “아프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추가 대북 인권제재에 나설 것이며 대북 제재 협의 등을 위한 러시아와의 고위급 협의가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공개했다.

이 당국자는 또 “EU의 주요 7~8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만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 모임은 ‘저승사자들의 모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EU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나라도 포함돼있다”고도 말했다. 해당 조치들은 통상적으로는 물밑에서 추진을 한 뒤 성사가 가시화했을 경우 공개해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그만큼 북핵 외교에 있어서 공백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당국자는 최근 대북제재에 대해 연중무휴로 이뤄지는 ‘상시성’, 한ㆍ미ㆍ일이 독자제재를 상호보완하는 ‘확장성’, 북한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실효성’ 등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12~1월은 외교가에서는 ‘슬로우 시즌(비수기)’이라고 하는데 북핵 제재ㆍ압박 외교는 정반대로 어느 때보다 바쁜 달이 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는 최근 상황(탄핵정국) 때문에 외교 공백 얘기가 나오는데, 제재압박 외교는 연중무휴로 전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또 북핵 이외의 이슈에서도 외교 공백을 없애기 위한 조치들을 다양하게 공개했다. 임성남 제1차관이 12일 싱가포르에서 남아태지역, 22일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라시아 지역 공관장회의를 주재한다는 것과 안총기 제2차관이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중동지역 공관장회의를 갖고 근무 태세를 점검하겠다는 일정 등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도 별도 브리핑에서 “1월달에 정상외교 일정을 준비해서 연두보고 후 확정을 하는 게 관례였다”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두업무보고 일정 자체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 공백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북한은 6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이라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사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탄핵정국 속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치와 외치가 분리될 수 없는 한국의 특성 상 매우 비정상적인 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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