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파면 전망 우세하나 심리 길어지면 결과 예단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10일 오후 헌법재판소에 도착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강 재판관은 이탈리아 출장 중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김상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10일 오후 헌법재판소에 도착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강 재판관은 이탈리아 출장 중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김상선 기자

탄핵의 공은 지난 9일 국회에서 헌재로 넘어왔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자리를 지켜야 심리와 결정이 가능하고 6명이 찬성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이 확정된다.

헌재 심판 어떻게 되나

헌법재판관들도 탄핵소추에 찬성한 234명의 국회의원과 같은 판단에 이르게 될까.일부 검찰 출신 정치인이나 법조인들 중에서는 기각 결정을 점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추천 기사

박 대통령 탄핵 문제를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도로 보고 현재 헌법재판소의 구성상 기각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지명해 임명된 재판관들이고, 공안검사 출신인 안창호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대다수의 헌법재판관들은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법학계에서 탄핵 기각과 박 대통령의 직무 복귀를 전망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어렵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관들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 이념과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는 의미”라며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헌법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을 헌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순실·안종범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등의 내용에는 박 대통령도 미르재단 등의 공익 목적을 강조하거나 최순실·안종범의 일탈행위를 알지 못했다는 식으로 반론할 수 있겠지만 공무상 비밀누설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탄핵 사유가 되는 만큼 파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는 달리 2005년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들이 개인의 의견을 결정서에 남기도록 헌법재판소법이 개정된 것도 파면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대 여론이 높았던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국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흐름을 거부한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의견을 남기는 것에 헌법재판관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도 흑인에 대한 입학 차별이 문제가 됐던 1954년 ‘브라운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끝까지 입학 차별이 합헌이라던 잭슨과 리드 대법관이 여론에 못이겨 만장일치에 이른 일화가 유명하다”며 “이번 탄핵 심판에 임하는 재판관들도 비슷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현실적으로 심리에 소요되는 절대 시간과 내년 1월 31일과 3월 13일로 각각 예정된 박한철 헌재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 이후 예상되는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부터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까지는 64일이 걸렸지만 박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는 이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가 제기한 탄핵 사유가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 비해 훨씬 많고 복잡한 데다 관련된 사람의 숫자도 많기 때문이다.

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이 주요 관련자들의 검찰 진술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 부동의하면 이들을 일일이 증인으로 불러야 될 수도 있다”며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양상이 다른 재판”이라고 말했다. JTBC가 입수해 보도한 ‘태블릿 PC’의 증거 능력 인정 여부 등 사실 인정 단계부터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주된 탄핵 사유는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개 석상에서 한 일련의 발언들이 부정한 선거 개입이라는 내용이었다.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합동 회견) 등의 발언이 문제였다.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희정 당시 대선후보 정무팀장 등 측근들의 비리 혐의들도 탄핵 사유에 포함됐지만 이미 개별적으로 1심 재판이 끝났거나 마무리 단계에 놓인 상태였다.

반면에 3일 발의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는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국가 정책과 고위 공직 인사 등을 좌지우지하도록 해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등의 5개 항목의 헌법질서 위배 행위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 등에서 벌어진 4개 항목의 법률 위반 행위가 탄핵 사유로 열거됐다. 헌재는 이 모든 행위에 대해 개별적으로 탄핵 사유가 될 만한지 판단해야 한다. 검찰 수사로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7시간 의혹’까지 탄핵 사유에 포함되면서 심리가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현실적으로 이 재판관 퇴임 때까지 파면 여부가 결론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정국은 야권 주도의 거국내각 구성에 실패하고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굳어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느냐를 두고도 법조계와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황 총리가 보수 성향의 헌재 소장 임명을 시도할 경우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헌재는 8인 체제나 7인 체제로 파행 운영될지도 모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재학원 교수는 “7인 체제로 파면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2명만 파면에 반대해도 기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심리가 길어지면 탄핵심판 결정 시기가 박 대통령의 임기 만료 8~9개월 남은 시점이 될 수도 있다”며 “이때는 국민들의 분노나 실망감이 지금보다 사그라들면서 헌재가 파면이 오히려 국가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될 여지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 재판관으로 지정된 강일원(57·사법연수원 14기) 헌법재판관은 당초 예정된 해외 일정을 앞당겨 10일 오후 입국해 곧바로 헌재로 출근했다. 강 재판관은 “이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바르고 옳은 결론을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주심 재판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헌재는 휴일인 이날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진성, 서기석, 이정미, 안창호 재판관 등 5명이 출근해 사건검토에 착수했다.

임장혁·김선미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