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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모든 권한 행사 불가…신분·경호·의전만 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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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시점은 탄핵안 소추 의결서가 헌법재판소와 청와대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2004년 3월 12일, 노 대통령은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당시 63일간 직무대행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는 저서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는 상태에서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노 대통령은 진해에서 급거 상경했다”고 회상했다.

노무현 사례로 본 직무정지
고건 “비공식 간접보고만 했다”
헌재 심판 중 하야 법규정 없어
학계서도 “가능” “불가능” 갈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 공식적인 회의 진행 등의 업무는 직무대행이 맡는다. 대통령은 신분만 유지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법무부는 전무후무한 대통령 탄핵 상황에 대해 ‘권한 행사 정지된 대통령의 지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외교권 ▶공무원 임면권 ▶국군통수권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외교사절 신임·접수·파견, 공무원 임면·사면·감형·복권 등이 불가능하다. 총리·국무위원 등 공무원으로부터 대통령 권한 행사와 관련한 보고를 받거나 지시하는 일도 할 수 없다. 국회 출석도 할 수 없다. 다만 관저 생활, 관용차·전용기 이용, 경호 등 대통령에게 따르는 각종 의전상의 예우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 비서실도 대통령만 직무가 정지될 뿐 수석비서관 회의를 포함해 모든 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간접적인 형식의 업무 보고는 가능하다. 고 전 총리는 “당시 업무 연속성 유지 차원에서 (대통령이) 비공식 보고는 받아도 된다는 법적 해석이 있었지만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문제가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63일 동안 노 대통령과는 세 번 통화했다”며 “다만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을 통해 서면자료를 전달하고, 북한 정세 등 안보자료도 NSC 사무처에서 일일 자료를 올렸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보고를 하거나 국정에 대해 깊이 의논한다면 법을 어기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사적 만남은 일절 없이 박봉흠 실장을 통해서만 서면 보고가 오갔다”고 적었다.

대통령의 자진 사임(하야)은 가능할까. 국회법 134조 2항은 ‘소추의결서가 송달된 때에는…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탄핵당하면 사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문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따로 없는 선출직 공무원이어서 사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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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소추는 형사법상 기소에 준하는 것인데, 피의자에 해당하는 탄핵 소추 대상자가 스스로 심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다시 취하하는 안을 의결하면 대통령의 사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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