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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아이를 빼앗긴 여자가 빼앗은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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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TUDIO 706

사진 : STUDIO 706

‘미씽:사라진 여자’(11월 30일 개봉, 이하 ‘미씽’)는 여러 면에서 반가운 영화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두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흔치 않은 한국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막 기어 다니는 아기 다은(서하늬)을 키우는 워킹맘 지선(엄지원)과 중국인 보모 한매(공효진)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 속 여성의 현실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미씽:사라진 여자’ 이언희 감독에게 묻다

그뿐 아니라 ‘모성’이란 소재를 여느 한국영화보다 더 복합적·현실적으로 그린다. 여성의 현실과 모성의 의미를 장르영화에 어떻게 담을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이언희(40) 감독. 그 남다른 고민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세 여성 기자가 그를 만나 영화 안팎 여성의 삶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한국영화 속 여성과 어떻게 다른가

‘미씽’의 가장 빛나는 성취는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한 여성 캐릭터다. 의사 남편 진혁(고준)과 이혼하고 딸 다은을 홀로 키우는 지선은, TV 드라마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워킹맘이다. 그는 중국인 보모 한매에게 다은을 맡기고 정신없이 일에 휘둘린다. 그럴수록 아이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고, 양육권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진다. 워킹맘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듯한 연출은 한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다은과 함께 사라진 한매. 둘의 행방을 쫓던 지선은, 한국에서 이주민 여성으로 기구하게 살아온 그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magazine M(이하 M) 홍은미 작가가 쓴 원작 시나리오를 직접 각색했다고 들었다.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이언희 감독(이하 이 감독) 원작 시나리오 자체가 연출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 기자 출신인 홍 작가가 워킹맘이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그려 낸 지선 캐릭터가 아주 사실적이었다. 지선이 한매의 비밀을 목격하는 장면까지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그 뒷이야기는 내가 덧붙인 것이다. 그 결과,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지선이 한매를 이해하는 이야기로 완성됐다.
M 이렇게까지 일하는 여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국영화가 있었나 싶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부터, 지선이 드라마 제작사 대표로부터 ‘수퍼 을(乙)’ 취급받는 상황까지.
이 감독 직업적 디테일을 살리려 각색 과정에서 드라마 홍보사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 여성의 경제력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는 처음 봤다’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극 중 하이힐을 신고 서 있던 지선이 남몰래 구두에서 한쪽 발을 빼 종아리에 문지르는 장면이 있다.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에겐 아주 일상적인 행동인데, 남성 스태프들은 이를 어떻게 화면에 담아야 할지 모르더라. 그래서 하이힐을 신으면 발이 얼마나 아픈지부터 설명했다(웃음).
M 지선의 일상을 묘사하는 장면 중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이 감독 극 초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지선이 집에 오자마자, 홍보를 맡은 드라마 본방송을 확인하려 TV를 켜고 소파에 눕는다. 이 장면을 두고 ‘집에 와 바로 다은을 찾지 않는 지선이 모성애 없는 여자로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는 지선이 관객에게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주변 의견을 반영해 여러 버전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지선이 깊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눕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녀 할 것 없이, 헌신적인 어머니 상(像)에서 벗어나는 묘사를 불편해 하는 이들이 아직 많더라.
M 지선이 일에 매달리는 건, 혼자 다은을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하느라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하는 데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조차 일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극 중반 ‘한매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엄마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감독 한매의 과거 장면 중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대목이 있다. 한매는 아픈 딸 재인(김가률)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안마방에서 일한다. 거기서 한매는 자신을 좋아하는 건달 현익(박해준)과 함께 있다 병원으로 향한다. 자신을 붙잡는 현익을 두고 나서는 순간, 한매가 달뜬 마음에 싱긋 웃는다. 이에 대해 몇몇은 ‘어떻게 아픈 아이를 둔 엄마가 웃을 수 있느냐’고 하더라. 힘겹게 살아온 한매가 오랜만에 낭만적인 기분을 느낀 건데, 충분히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자녀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고 여기는 건 상당히 이기적 태도이지 않나. 엄마라는 존재에 막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니까. 그 틀에서 벗어나 ‘엄마’를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그리려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본 주변 엄마들의 반응은 좋은 편인 듯하다(웃음).
M 처음 한매를 보모로 들일 때, 지선의 태도도 흥미롭다. 친절하지만 한매가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깐깐하게 구는데.
이 감독 주변 엄마들을 보니, 보모 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아이의 안전이 달린 일인데 덮어놓고 믿을 수도 없고.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보모를 감시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한편으론 이해된다. 엄마의 그런 복잡한 심경을 포착하고 싶었다.
M 한매를 비롯해 이주민 여성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 중 곳곳에 드러낸 점도 돋보인다.
이 감독 실생활에서 본 모습들을 많이 투영했다. 경기도 분당의 친정 근처에서 한밤중에 마주쳤던 외국인 노동자, 잠깐 입원 생활하며 봤던 간병인 등등. 그들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각색 과정에서 20대 조선족 여성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6년이나 됐는데 한국인 친구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지선이 한매를 찾아 이주민 주거 지역에 들어서는 장면에서 그 시선을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다. 한국인 사이에서 이주민이 소수의 위치에 놓이는 것과 반대로, 그 공간에서는 지선이 두려움을 느끼고 한국인이라 쫓겨난다.
M 일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이토록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한매를 지선에 소개해 준 중년의 보모(박명신), 재인과 같은 병실에 있던 간병인(이용이), 안마방 주인(김선영)까지 모두 여성이다.
이 감독 그 역할을 연기할 중년 여성 배우를 찾는 일도 어려웠다. 지인이 ‘연극 배우 출신의, 성공한 남자 배우의 아내를 찾아보라’고 하더라(웃음). ‘함께 연기하다 결혼했지만, 이후 제대로 연기할 캐릭터가 없어 활동을 쉬고 있는 여자 배우들이 많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캐스팅한 배우는 없지만, 김선영 등 관록 있는 중년 여성 배우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맡길 수 있어 기뻤다.
M 반면 거의 모든 남성 캐릭터들은 답답할 정도로 무기력하다.
이 감독 의도한 것은 아니다. 지선과 한매에 집중하다 보니 기능적으로 묘사된 면이 없지 않다.

M 오히려 그 점이 ‘미씽’의 주제와 부합한다고 봤다. 지선과 한매가 이토록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는 건, 남성 중심 사회의 불합리한 인식과 구조 때문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지선의 전남편, 지선의 말을 믿지 못하는 박 형사(김희원), 한매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그의 남편(장원영) 등 이 영화의 남성 캐릭터들은 그 사회적 책임을 나눠 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적인 묘사와 탁월한 감정 설계

‘미씽’은 ‘한매가 왜 다은을 데리고 사라졌을까’ 묻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지선과 한매의 교감을 그리는 드라마로 흐른다. ‘이름도 과거도 모두 가짜인 한매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 궁금증을 동력 삼아 달려가던 이야기는, 한매의 안쓰러운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그를 또 다른 피해자로 묘사한다. 그에 대해 지선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미안함, 한매를 향한 공감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M 결정적 순간 지선이 한매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감정의 흐름이 설득력 있다.
이 감독 그 부분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했다. 지선과 한매가 서로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다은을 제 딸처럼 돌보는 한매에게 지선은 큰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 두 사람이 ‘고용주와 보모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극 후반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로 보면, 한매는 지선 부부에게 원한을 품고 일부러 다은의 보모가 돼 그를 납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선이 다은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봤기 때문에, 한매가 지선을 완전히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M 왜 두 인물이 공감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이 감독 지선과 한매는 계급도 국적도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들이 다른 위치에 놓인 건 개인의 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따져 보면 한매도 영리한 여성이지 않나. 단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겪어 왔을 테다.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한매도 지선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M 여성 감독으로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처지에 공감한 부분이 있었나.
이 감독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본 몇몇이 ‘여자가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보모를 구하진 않는다’고 말해, 내 귀를 의심했다. 만약 내가 애를 데리고 촬영장에 나간다면, 나를 감독으로 고용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출산과 육아 문제부터 남성 중심의 한국 영화계에서 감독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여성 감독으로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미씽’이 남긴 질문들

‘미씽’은 강렬하고 파격적 이미지를 남기는 영화다. 특히 혀를 내두를 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미어지게 만드는 장면을 눈앞에 들이밀기도 한다. 한매의 결말을 그리는 방식 역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감독은 “두 여성과 그들의 아이를 그리는 방식이 윤리적인지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설명했다.

M 한매는 예상하기 어려운, 아주 일상적인 곳에 딸의 시체를 둔다.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이 감독 아이를 결코 버릴 수 없는 마음.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죽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동물을 본 적 있다. 아이의 숨이 멎었을지언정,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은 한매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
M 그 대목에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 충격적인 이미지다.
이 감독 나는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힘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 아이의 실종 사건을 다룬 TV 다큐를 보다 소스라치게 놀란 적 있다. 아이를 되찾기 힘든 사건이라, 나도 모르게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다큐 중반 그 아이의 사진이 나왔을 때 깨달았다. 그 순간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존재를 실감하게 한 건, 한 장의 이미지였다. ‘미씽’에서도 회상 장면에만 등장하는 한매의 아이를 그렇게라도 관객에게 직접 보여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M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있다면.
이 감독 한매가 죽은 아이를 안고 엉엉 우는 장면. 다시 봐도 마음이 괴롭다. 찍을 때도, 편집할 때도 ‘이렇게까지 보여 줘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보는 이를 감정적으로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M 마지막 순간 한매는 그를 향한 지선의 손을 뿌리친다. 왜 그 손을 놓았을까.
이 감독 안 그래도 어느 감독님이 영화를 보고 ‘그 장면에서 한매가 지선의 손을 잡으면 안 되느냐’고 묻더라. 지선이 한매의 처지에 공감하긴 하지만, 남의 아이를 납치한 건 명백한 죄다. 그 점에서 한매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책임을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선택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것이, 한매를 위한 최선의 예우라 여겼다. 생각해 보면, 한매는 기구한 운명에 이끌려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무언가를 선택한 적 없다. 마지막 순간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나. 그 장면을 애틋한 판타지처럼 그린 이유다.
M 지선도 한매도 결국은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다. 그들을 엄마를 넘어선 ‘여자’로 그리는 파격은 불가능했을까.
이 감독 이 영화도 큰 용기를 낸 거다(웃음). 기존의 시선과 관습을 쉽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자본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미씽’만 해도 현실적인 여성상을 그린다는 이유로 모든 제작 단계에서 여느 한국영화보다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보다 더 나아간, 모성을 넘어서는 여성 캐릭터?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한국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장성란·이지영·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이소정(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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