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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가결…TK에선 "당연한거 아닌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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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당시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한 경로당.  달성군민들이 tv를 보며 탄핵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정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당시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한 경로당. 달성군민들이 tv를 보며 탄핵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 대구=김정석 기자]

"저게 말이 되나. 아이고 속에 천불이 나 죽겠네." 9일 오후 4시10분쯤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강림2리 경로당. TV에서 '박근혜 탄핵 가결'이라는 자막이 뜨자, 경로당에 있던 10여명 노인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용식(87)씨는 "우짜면 좋노. 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살았는데 가슴 아파 죽겄다. (내가) 친척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부강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쌍해서 우짜노"라고 안타까워했다. 김만수(85)씨는 "야당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저렇게 탄핵된 거다. 박근혜 인자 어디로 가노. 뭐 우짜겠다는 기고"라고 화를 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달성군에서 내리 네 번 국회의원을 지냈다. TK(대구·경북)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면 달성군은 '고향집'같은 곳이다. 탄핵 가결에 대해 애처로워하는 목소리는 달성군의 경로당 여기까지였다.

대구 시민 대부분은 탄핵 가결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대구 동성로 한 구두매장에서 만난 김연화(47·여·중구 남산동)씨는 "박 대통령이 헌법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부 이지윤(31·북구 태전동)씨는 "TK의 큰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고, 시민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기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하지만 잘못된 것이 있다면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남대에 다니는 윤소희(23·여)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있다면 일찌감치 하야했어야 한다. 탄핵 가결될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만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친 것이다"고 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직장인 황주상(32)씨는 "탄핵 가결은 당연한 결과다. 회사 직원들이 탄핵 가결 후 활짝 웃는 '이모티콘'까지 서로 보낼 정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익명을 원한 한 50대 주부는 "이제는 그만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9일 오후 대구 달성군 옥포면 강림2리 경로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발표를 들은 노인들이 TV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대구=김정석 기자]

9일 오후 대구 달성군 옥포면 강림2리 경로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발표를 들은 노인들이 TV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대구=김정석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는 반응이 갈렸다. 전병억(77)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이사장은 “탄핵이고 대통령 하야고 다 반대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책임이 있지만 탄핵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인 이우성(33·구미시 상모동)씨는 “박정희는 박정희고, 박근혜는 박근혜다. 아주 잘됐다. 박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서라도 헌재의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TK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탄핵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박찬석(76) 전 경북대 총장은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딱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탄핵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노목(63) 전 대구변호사협회 회장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절차상 문제가 없는 부분이니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고 본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박근혜 대통령이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은 것은 충분한 탄핵 사유다. 대통령의 범죄 사실은 검찰수사에서도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본관인 고령박씨 집성촌이 있는 경북 성주군에서도 박 대통령의 탄핵 가결로 착잡한 분위기였다. 성주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김형규(54)씨는 "박 대통령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가 이런 대통령을 뽑았나 하는 생각에 분통 터지고 짜증이 난다"며 "앞으로 경제가 IMF 외환위기 때보다 어려워질 게 뻔해 농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 경주 지진 진앙인 내남면 덕천1리 이근열(64) 이장은 "박 대통령이 잘못을 했기에 내려오긴 해야겠지만 야당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아 보기는 안 좋다"면서 "어느 당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시골 사람들이)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구·구미·성주·경주=송의호·김윤호·최우석·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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