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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들 “대가 없었다” 3자 뇌물죄 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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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기업 총수 청문회 대통령 독대 때 무슨 일이

“대가성을 갖고 출연한 바는 없고 제 결정도 아니었다”(최태원 SK그룹 회장)

법조계 “뇌물죄 적용 거의 불가능”
박영수 특검은 제3자 뇌물죄 집중
대통령 아닌 최순실 이익봤나 조사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대가를 바라고 한 지원은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진상규명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현대차· LG·SK 등 9대 그룹 총수들은 이처럼 유사한 답변을 쏟아냈다. 이들은 “대가성은 없었고 (기업 총수 등의 사면이나 숙원 과제 등)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의식해 ‘준비된 발언’을 내놨다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이날 국정조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들 기업 총수 등이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사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774억원의 출연금과 일부 총수가 최순실(60·구속 기소)씨 측에 추가로 지원한 사업비 등이 뇌물이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해당 출연금과 추가 지원금에 대가성이 있다거나 청탁과 함께 오간 것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면 기업 총수들은 뇌물 공여자로 처벌받게 된다. 그 경우 박 대통령은 뇌물 수수자가 된다.

하지만 기업 총수들은 하나같이 “출연금을 구체적으로 요구받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청와대 요청을 기업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참 어렵다”(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구본무 LG그룹 회장)는 답변도 있었다. 자신들은 뇌물 공여자가 아니라 국정 농단 사건의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법리적으로 이들 기업 총수와 박 대통령에게 뇌물·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뇌물죄 적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1997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뇌물 사건에선 두 전직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달리 정치자금 등의 명목으로 직접 돈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대가가 약속되지 않았지만 범위가 넓은 대통령의 직무상 ‘대가성’이 인정돼 ‘포괄적 뇌물죄’로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은 단서나 정황은 드러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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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이어 특검이 꺼내든 카드가 제3자 뇌물죄다. 이는 박 대통령이 아닌 제3자가 이익을 취한 경우를 전제로 한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 수수의 공범, 기업들이 뇌물 공여자가 되는 구도다.

이에 따라 특검은 향후 수사에서 돈을 준 기업과 박 대통령 사이에 사면이나 숙원 사업 요청 등의 ‘부당 거래’가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윤호진·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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