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첫 진료 현장 가보니…클릭 8초만에 치료법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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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진료실 사진. 최정동 기자

5일 오후 인천 남동구의 가천대 길병원. 1층에 자리한 'IBM 왓슨 인공지능 암센터' 진료실에 의사 5명과 간호사 1명, 환자 1명이 모였다. 일반적인 진료실 풍경과 달리 이곳에는 거대한 모니터 3개가 설치돼 환자의 수술 부위 사진 등이 올라와 있었다. 이들이 모인 건 대장암 환자 조태현(61)씨의 항암 치료를 어떻게 할 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조씨는 대장암 3기로 주변 림프절까지 암 세포가 전이돼 지난달 복강경 수술을 받은 상태. 주치의 백정흠 교수(외과)는 10여분 간 다른 교수들의 의견을 먼저 들었다. 그러고는 마주 앉은 조씨에게 "수술은 완벽히 됐지만 앞으로 항암 요법이 필요할 거 같다. 일단 6개월간 치료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왓슨 진료실 사진. 최정동 기자

치료 계획을 설명한 백 교수는 곧이어 책상에 놓인 마우스를 움직여 '왓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조씨의 정보가 적힌 내용을 클릭하자 'Watson is processing your request'(왓슨은 당신의 요청 사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약 8초 후, 왓슨은 조씨가 앞으로 받아야 할 항암 치료법을 각각의 근거·점수와 함께 제안했다. 왓슨의 제안 가운데 점수가 제일 높은 건 '폴폭스'와 '케이폭스' 항암제 치료였다. 당초 의료진이 시행하려던 치료법과 동일한 판단이었다. 백 교수는 "의료진과 왓슨 모두 혹시 남아있을 지도 모를 암세포를 제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항암화학요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항암치료로 제안한 방법도 현재 가장 우수한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으로 우리 생각과 같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왓슨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했다. 의사 진료와 왓슨 제안 등을 거쳐 결정된 치료 방법이라 신뢰가 가고 벌써 치료된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왓슨 진료실 사진. 최정동 기자

또다른 '알파고'의 등장일까.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의료계에도 진출했다.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미국 IBM사의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가 이날 조태현씨를 시작으로 환자 진료에 투입됐다. 환자와 의사의 일대일 대면 진료가 아니라 의사 여럿에 환자 하나, 거기에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새로운 방식이다. 왓슨은 대표적인 AI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힌다. 이미 미국 내 의료·법률 등 전문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인도 등 세계 각국이 왓슨을 활용한 암 진단 서비스 운영에 나섰다. 특히 주요 암 진단 정확도가 90%를 훌쩍 넘겨 전문의보다 더 높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왓슨 진료실 사진. 최정동 기자

길병원에 설치된 IBM 왓슨 인공지능 암센터는 왓슨 슈퍼컴퓨터 외에 전문의 30여명, 전문 코디네이터(간호사) 등이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다. 주치의가 먼저 환자를 진료한 뒤 해당 환자의 ▶나이 ▶몸무게 ▶현재 상태 ▶기존 치료법 ▶조직·혈액·유전자검사 결과 등을 왓슨에 입력한다. 그러면 왓슨이 자체 분석한 치료 방법과 근거 등을 제안하고 주치의가 여러 전문의들의 의견을 들어 최상의 치료 계획을 고르는 식이다. 암센터에는 내과·외과·영상의학과·혈액종양학과 등 8개 진료과 의사가 소속돼 있다. 길병원은 의사와 AI의 '협진'을 통해 불필요한 검사 횟수를 줄이고 진단 오류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길병원 신경외과 이언 교수는 "왓슨 암센터를 이용하면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진 290여 종의 의학저널·문헌과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의 전문자료를 습득한 상태다. 2012년 미국의 메모리얼슬로어네터링암센터(MSKCC)에서 '레지던트' 역할로 시작했으며 암 환자 진료 경험을 꾸준히 습득하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모든 암을 분석할 수 없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내년이면 전체 암의 85% 정도를 분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길병원도 일단 대장·폐·유방·위처럼 환자가 많은 4개 암에만 왓슨 진료를 적용키로 했다. 백 교수는 "아직 왓슨이 의사는 아니고 좋은 조언가라고 생각한다. 왓슨이 제시하는 치료법을 반드시 따라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차세대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등 인간이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빅데이터가 공개된다면 왓슨의 능력은 빠르게 증폭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