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족」밖에 모른다|「가정의 달」…오늘의 가정을 진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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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0년대 이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한국가족이 부부중심의 핵가족화 하면서 대두된 사회문제의 하나가 지나친 「가족적 이기주의」. 가장·주부·자녀 등 가족구성원 모두가 이 황막한 세상에서 편히 쉴 곳은 『내집 뿐』이고, 힘이 되고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족 뿐』이라는 강한 가족에의 집착은 종종 사회발전의 독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면서 날로 만연해 가는 한국의 가족적 이기주의를 살펴보고 극복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M사에 5년째 근무하고 있는 K씨(32)는 최근 직장을 계속 다니느냐, 그만 두느냐로 갈등을 겪고 있다. 부인과 딸 등 세 식구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현재 계장. 금년 봄 정기인사에서 당연히 승진될 줄 알았던 그가 오히려 자신보다 2년 늦게 입사한 S씨(33)에게 밀려 승진인사에서 누락되고 만 것.
알고 보니 S씨는 이 회사 실력자인 모씨와의 인척관계로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만 열심히 하면서 순수하게 살아온 K씨는 적개심과 함께 자기 회의에 빠져 정신건강상담실을 찾게되고 말았다.
D사에 다니는 L씨(30)의 갈등도 심각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은 첫 직장에서 동료·상사들의 비위를 목격한 때문.
동료들은 거래선이 집어주는 「공돈」을 적당히 상사에게 상납도 하며 챙기고 있으나 그는 부정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계속 버텨왔다. 결국 그 일이 상사로부터 눈총을 받게되고 동료들은 『혼자 깨끗한 체 한다』고 따돌려 직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실정.
이들은 모두 「내 가족이 잘살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하겠다」는 가족적 이기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케이스라고 대화기독교사회관 정신건강상담실 강경혜 실장은 말한다.
핵가족화로 가정중심주의가 강화되며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들의 가족적 이기주의는 직장에서 뿐 아니라 가정내에서도 자녀들에게 무조건 이길 것을 강요한다든지, 다른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가족문제연구·상담 및 치료원 강현양 원장은 지적한다.
이같은 가족적 이기주의는「믿을 것은 내 집 식구뿐」이라는 전통적 가정주의와 이기주의로 오해된 서구의 개인주의가 합쳐져 나타났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 여기에 산업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의 가치기준이 물질적인 것으로 변모 경쟁사회 속의 가정행복이 경제안정으로 동일시되며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처럼 가족적 이기주의가 늘어가고 있는 까닭에 대해 조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는 『가장이 생계 유지자로서 지나치게 도구화 돼 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서」라는 미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참다운 가족사랑조차 될 수 없다고 최신덕 교수(전 이화여대·사회학)는 말한다.
최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웃·사회 모두가 잘살아야 내 가정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들려주고 이같은 공동체 의식은 우선 자신의 가정내에서 상대방을 인격자로 대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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