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시인이 쓴 『홀로서기』 한달만에 1만부 팔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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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단이나 독자들에게 전혀 낯선 한 무명시인의 시집이 느탓 없이 서울·대구 등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를 기록하며 불티나게 날려나가 도종환씨의 시집 『접시꽃 당신』이후 다시금 독서계에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3월25일 소문없이 초판을 펴낸 뒤 한달도 못돼 4판, 1만부 가까이 펴낸 화제의 책은 신진시인 서정윤씨의 시집 『홀로서기』. 현재 종로서적·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에서 초베스트셀러시집인 『접시꽃 당신』을 바짝 뒤쫓으며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다림은/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좋다/가슴이 아프면/아픈 채로/바람이 불면/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나의 한쪽을 위해/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태어나면서 이미/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이제는 그를/만나고 싶다……」(『홀로서기』의 서두부분) .
이 『홀로서기』가 처음으로 독자들의 눈에 띈 것은 81년으로 서정윤씨가 영남대에 재학시 교지인 『영대문화』에 작품을 발표하고 난 뒤부터.
이 시는 그 내용의 보편성과 서정성에 힘입어 대구지방을 중심으로 카피와 필사본으로 광범위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의 편지와 방송가에 이 시가 인용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렇게 비공식문화의 유통경로를 통해 『홀로서기』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작가이름조차 바뀌거나 지워지기도 했다는 것.
종로서적 시집판매코너 담당자는 『홀로서기』는 3년 전부터 독자들이 찾기 시작했으며 그 동안 그 시의 필자가 누구인지 모른 채 다만 그런 시집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해 주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홀로서기」란 이름의 카페가 대학가에 있으며, 그 카페의 한쪽 벽면에 『홀로서기』란 시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종로서적에서는 일부러 그 작품의 복사본을 준비해 두고 그 시집을 찾는 독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독자들의 커다란 반향에 대해 평론가 장석주씨는 『범속한 일상적 대화와 같은 독특한 시어들이 시적탄력을획득하며 젊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한다』며 『보통사람들의 사랑과 일상에 대한 시인의 결곡한 끌어안음, 그 따뜻함이 단어와 단어사이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정윤씨는 57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84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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