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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트럼프 1조 달러 투자 공약, 한국에 ‘그림의 떡’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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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함승민 경제부 기자

함승민
경제부 기자

“1조 달러 인프라 사업에 한·미 기업이 함께 시공사나 투자자로 참여할 기회가 확대될 것입니다.”

미 인프라사업 참여 조건 깐깐한데
국내업계는 실적 적고 기술력 부족
“현지업체와 M&A·제휴 서둘러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9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오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1조 달러 인프라 투자’의 열매를 국내 건설업체가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건설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란의 경제 제재가 풀렸을 때 “새 시장이 열렸다”며 발 빠르게 준비하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국내 건설업계에서 사업계획을 얘기할 때면 중동·동남아·남미·아프리카는 언급하지만 미국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 미국의 인프라 사업은 ‘그림의 떡’이다. 일단 미국에서 중요하게 따지는 자국 내 트랙레코드(과거 실적)가 부족하다.

지난 50년간 국내 건설사가 미국에서 수주한 건설사업은 318건에 불과하다. 수주액도 87억 달러에 그친다. 이마저도 국내 기업이 계열사에 맡긴 미국 현지공장 건설사업이 대부분이다. 미국 사업자가 본토에서 발주한 사업을 국내업체가 단독 수주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부족한 기술력도 걸림돌이다. 해외 현장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속내를 뜯어 보면 다르다.

사업이 단순 시공에 치우쳐 있어서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엔지니어링 역량은 부족하다. 엔지니어링은 건설 프로젝트 중 기획·조사·설계·감리·유지·보수 등 시공을 제외한 사업 영역을 말한다.

최근 미국 발주자들은 관리의 편의를 위해 엔지니어링·시공을 통합발주하는 추세다. 사업을 따내려면 시공뿐 아니라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격경쟁력만 가지고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한다.

현실적인 제약도 많다. 미국은 시공규정이 까다롭다. 도량형도 다르다. 노동규정도 촘촘하고, 기능인력에 대한 대우가 좋아 인건비도 비싸다.

이를 극복하려면 오랜 기간 현지 네트워크를 만들고 경험을 쌓아야 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의 역량은 부족했다. 미국 외 해외건설 사업도 신통찮았다. 중동에서 대규모 적자로 움츠러들었다. 이후 국내 주택사업의 호황으로 안방에서 겨우 버텼지만 따뜻한 방 안에서 나가지 않으려하다 보니 안이함만 쌓였다.

이제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국내 주택경기를 장담 못하는 데다 저유가로 인해 예전처럼 중동에만 기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된 선진국 인프라 개선 사업은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지 업체를 인수·합병(M&A)하거나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트랙레코드와 기술력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큰 돈이 들어가야 한다. 분수령에 선 시점에서 건설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함승민
경제부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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