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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히는 지갑, 돈이 안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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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다섯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26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주차장엔 자동차 3000대가 입고됐다. 이달 17일 겨울세일이 시작된 후 두 번째 맞은 주말이지만 평균 주말 입고량보다 25% 적었다. 이날 본점 매출은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28일)보다 11.1% 줄었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이날 매출이 5.5% 떨어졌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세일 기간엔 마지막 주가 아니면 주말 매출이 마이너스인 것은 아주 드문 경우인데 세일 초기 매출이 큰 폭으로 하락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연말을 맞아 들떠야 할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영향이 크다. 지난달 29일 3만 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4주 만에 150만 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지갑을 여는 대신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드는 수요가 늘어나는 셈이다. 겨울 세일을 시작한 백화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달 넷째 주 주말(25~27일) 롯데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11월 넷째 주 주말(27~29일)보다 4.5% 하락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이달 들어 첫째 주(-2.6%)에 이어 둘째 주(-5.3%), 셋째 주(-5.1%), 넷째 주(-5.5%)까지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최순실 사태’ 소비심리 꽁꽁
백화점들 겨울 세일 직격탄
대형마트·홈쇼핑 매출 감소
“메르스 때보다 더 위축된 듯”

주로 생필품을 파는 대형마트나 홈쇼핑도 비슷한 분위기다. 롯데마트(-0.9%) 등 대형마트는 물론 주요 TV홈쇼핑의 매출도 내림세다. 26일 현대홈쇼핑의 오후 6~10시 매출(지난해 11월 28일 대비)은 13.7% 감소했다. GS홈쇼핑은 촛불집회를 감안해 의류 같은 패션 상품 대신 안마의자·온수매트·렌터카 같은 고가 상품을 내놨지만 매출은 1.5% 오르는 데 그쳤다. 이 시간대에 방송된 20개 상품 중 14개가 목표 매출을 채우지 못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연말인 데다 미국 최대 쇼핑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가 겹쳤는데도 평일과 매출이 비슷해 금융위기·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보다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달 대비 6.1포인트 하락한 95.9를 기록했다. 금융위기의 한파를 맞았던 2009년 4월(94.2) 이후 7년6개월 만에 가장 낮다. 하락폭은 메르스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6월(6.7포인트)보다 크다.

중소기업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28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300개사) 10곳 중 3곳은 현재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금융위기에 준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 매출 급감 등 내수침체(54%)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부) 교수는 “‘김영란법’으로 이미 한차례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까지 나라 안팎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정국이 안정돼야 소비 심리 위축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성화선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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