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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뻗친 트럼프 사업… 외교 정책에 갈등 예고

중앙일보

입력

세계 20여 개 국가 사업자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경유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각국 정부가 트럼프와 관련된 현지 사업자들에게 특혜를 주면서 정경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가 사업을 진행 중인 해외 국가 대부분이 우루과이·필리핀·파나마·카타르 등 개발도상국이어서 그간 개발도상국의 정경유착 차단에 공들여 왔던 미국 행정부의 노력이 퇴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트럼프와 나는 같은 부류"라고 동질감을 표명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달 트럼프의 필리핀 현지 사업 파트너인 호세 안토니오를 대미 특사로 임명했다. 안토니오는 마닐라 중심가에 57층 높이 트럼프 타워를 건설하고 리조트 등 필리핀 현지 트럼프 사업을 추진 중인 부동산 사업가다. 필리핀 현지에서 트럼프 사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인이 필리핀의 외교 특사라는 정치적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안토니오는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자 뉴욕 트럼프타워를 방문해 현지 사업에 초기부터 관여해왔던 장남 트럼프 주니어 등 트럼프 자녀들을 만났다.

NYT는 "대통령 당선인의 사업 파트너가 외교 특사를 겸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며 "이 사례를 본 해외 고위 관료들 사이에선 '트럼프 일가와 해외 기업인 간의 관계가 미국의 대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우리는 미국과 해외에 이처럼 거대한 제국을 거느린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다.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평했다.

트럼프의 사업이 가장 많이 진행 중인 인도는 정경유착의 우려가 가장 높은 곳이다. 트럼프는 현재 인도에서 총 15억 달러(1조7554억원) 규모의 부동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의 인도 현지 파트너 업체인 판치실은 인도의 유력 정치인 샤라드 파와르 국민회의당(NCP) 대표와 연관이 깊다. 파와르의 딸 수프리야 술레는 NCP 소속 국회의원인 동시에 판치실의 지분 2%를 보유하고 있다. NYT는 이 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인도 정부가 국영 은행에 압력을 넣어 판치실에 저리 자금을 제공하는 등 트럼프의 사업에 특혜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는 지난 15일 사가르 초디아 판치실 이사 등 이 업체 임원들을 만나 인도 현지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터키에서 트럼프 사업을 추진하는 현지 파트너도 정치인들과 연관이 깊다. 이스탄불 중심가에 40층 높이 트럼프 타워 2채를 건설한 사업가는 미디어·에너지·관광 등 온갖 분야에 손을 대고 있는 터키의 유력 기업인 아이든 도안이다. 터키 최대 부수 일간지 휴리에트를 소유한 도안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해고하는 등 정경 유착 혐의가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터키에 약간의 이해관계가 있다. 터키에 아주 큰 건물을 두 채나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정치인들에게 직접 청탁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지난 20일엔 트럼프가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트럼프 타워의 건축 허가를 내달라고 부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2일엔 트럼프가 나이절 패라지 영국 독립당 대표를 만나 스코틀랜드에서 추진 중인 풍력발전기 건설이 자신의 골프클럽 경관을 해칠 수 있으니 반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트럼프 측은 이 보도들을 부인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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