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알려면 파리, 뷰티는 서울로”란 말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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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내 ‘K뷰티’ 열풍 이끄는 사라 리

사라 리는 작년 초 미국 ABC방송의 투자 유치 오디션에 출연해 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사진 김상선 기자]

사라 리는 작년 초 미국 ABC방송의 투자 유치 오디션에 출연해 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사진 김상선 기자]

글로벌 화장품 회사 임원 자리를 내던지고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화장품을 미국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K뷰티 알리기는 미국 최대 화장품 매장 세포라로, 홍콩 프리미엄 백화점 레인 크로포드로 번져나갔다. 로레알USA 이사 출신으로 K뷰티 유통업체 ‘글로우 레시피’를 창업한 사라 리(한국명 이승현) 공동대표 이야기다. 세포라 바이어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를 이달 초 서울에서 만났다.

유통업체 ‘글로우 레시피’ 공동 창업
“미국선 성분보다 효능을 잘 알려야”

사라 리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5년 1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ABC방송의 투자 유치 오디션 ‘샤크 탱크’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사라 리와 크리스틴 장. 이들 30대 한국 여성 두 명은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심사위원들의 호기심을 자아낸 끝에 42만5000달러(약 5억원)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회사 사이트의 접속 건수는 순식간에 수십 만 건으로 올라가며 다운될 정도였다.

“투자액이 크긴 했지만 글로우 레시피는 방송 전부터 이미 흑자 회사였어요. 2014년 크리스틴과 함께 각각 2만5000달러(3000만원)씩 모아 회사를 만들었는데 3개월 만에 흑자가 나기 시작했거든요. 샤크 탱크 출연으로 얻은 건 사실 유명세였죠.”

홍콩 레인 크로포드 백화점에 설치된 팝업 스토어.

홍콩 레인 크로포드 백화점에 설치된 팝업 스토어.

그 뒤 글로우 레시피는 ‘미국 시장과 K뷰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소개하는 회사’라는 명성이 굳어졌다. 2014년부터 세포라 요청을 받아 한국의 스킨케어 트렌드 보고서를 만들어왔다.

“미국에서는 ‘패션을 알려면 파리로, 뷰티를 알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죠. 미국 뷰티 기자라면 누구나 서울에 가서 피부과 시술과 찜질방을 경험해보고 싶어해요. 세포라가 우리에게 트렌드 소개를 부탁한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죠.”

세포라가 이들의 보고서를 공개하면 새로운 화장품 군이 만들어질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쫀득한 제형의 한국 젤리팩을 소개한 ‘메이크업 그립퍼’(make-up gripper)도 그중 하나다.

“미국인들은 끈적한 화장품을 싫어해요. 한국인들은 쫀득하다고 좋아하지만 미국에선 먼지가 들러붙어 불편하다고 생각하죠. 만약 젤리팩을 그대로 시장에 내놨다면 잘 팔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다음 단계 화장을 잘 먹게 만들어준다는 장점에 집중했어요. 끈적이기 때문에 메이크업이 잘 흡수되고 밀착력이 생겨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어 별명을 메이크업 그립퍼라고 지었더니 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후 세포라 내에 메이크업 그립퍼라는 새로운 품목이 생겼고 프리이머와 메이크업 베이스 같은 제품이 함께 소개됐다. 이 대표에게 한국 브랜드 화장품이 번번이 미국 진출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젤리팩과 메이크업 그립퍼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품질로는 한국 화장품이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다가가는 접근법이 부족해요. 한국 화장품은 귀여운 패키지나 성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선 효능과 편이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잘 쓰고 있던 샤넬이나 디올의 스킨케어 제품 대신에 왜 한국 화장품을 써야 하는지 이유를 줘야 합니다. ‘이건 정말 좋은 화장품이야’가 아니라 ‘이걸 바르면 화장이 정말 잘 먹혀’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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