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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혁신의 현장] 1조 매출 90%가 라이선스…소리 다스려 돈 버는 돌비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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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돌비 래버러토리스(Dolby Laboratories, 이하 돌비)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

돌비 래버러토리스(Dolby Laboratories, 이하 돌비)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

저성장이 표준이 된 ‘뉴 노멀’의 시대에도 글로벌 시장엔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의 돌파구를 찾는 기업들이 있다. 연구소·공장 등 이들이 혁신하는 해외 현장을 직접 가봤다.

첫 공개 샌프란시스코 본사 가보니
잡음 제거 기술로 음반시장 석권 뒤
‘스타워즈’로 입체 음향 부문도 장악

편집자 주

한 과학자가 센서가 촘촘히 부착되어 있는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고 영상을 보고 있다. 인간의 뇌가 음향과 영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장면이다. 25명의 과학자가 돌비의 미래를 준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돌비]

한 과학자가 센서가 촘촘히 부착되어 있는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고 영상을 보고 있다. 인간의 뇌가 음향과 영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장면이다. 25명의 과학자가 돌비의 미래를 준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돌비]

최근 미국 입체음향 기술 기업인 돌비 래버러토리스(Dolby Laboratories, 이하 돌비)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돌비 신사옥은 지난해 9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완공했다. 연면적 30만㎡(약 9만평), 지상 16층 건물에 80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연구실 100여 곳을 한 곳으로 모았다.

이곳은 영상과 음향 관련 연구실 뿐 아니라, 감각몰입 연구소(Sensory Immersion Lab)와 가정의 거실과 방을 재현한 실험실도 있다.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같은 신기술 연구실도 있다.

돌비 사옥 10층의 사운드랩. 철저한 방음 장치가 갖춰진 연구실 곳곳에 스피커들이 배치돼 있다.[사진 돌비]

돌비 사옥 10층의 사운드랩. 철저한 방음 장치가 갖춰진 연구실 곳곳에 스피커들이 배치돼 있다.[사진 돌비]

10층 돌비 애트모스 연구실은 ‘사운드랩’으로도 불린다. 애트모스는 영화에 나오는 사물의 위치에 따라 음향이 나오고, 사물이 이동하면 소리도 이동하는 돌비의 대표 기술이다. 사운드랩은 10cm가 넘는 두께의 문과 충격 흡수용 바닥으로 소음을 차단했다. 연구실 천장과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브렛 크로켓 음향기술연구부문 부사장은 “사옥 내에서 최고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보통 도서관의 NC(Noise Criteria, 소음 기준)가 16 정도인데, 이곳은 NC 5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돌비의 혁신에는 25명의 과학자들도 힘을 보탠다. 이들은 석·박사급 사이언티스트로 돌비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돌비의 미래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파피 크럼 수석과학자가 한 연구실로 안내했다. 센서가 촘촘히 부착된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고 영상을 보고 있는 연구원이 있었다. 모니터에는 뇌파 그래프가 요란하게 움직인다. 크럼은 “인간의 뇌가 음향과 영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중”이라고 설명했다.

25명의 과학자들은 전공도 생리물리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으로 다양하다. AR·VR과 같은 미래 신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크럼은 “요즘 공을 들이는 연구는 감각”이라며 “감각을 향상시키는 기술이 일상 생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재풀과 시설을 갖추고 매년 매출액의 20%에 달하는 R&D 투자비를 수십년간 쏟아부어 돌비는 4000여 개의 특허(올 4월 기준)를 보유하게 됐다. 이 특허는 영화 입체음향 시장에 후발 주자가 나오는 것을 막는 무기다.

사옥 여기 저기엔 연구자들이 영감을 얻도록 예술 작품이 설치돼 있다.[사진 돌비]

사옥 여기 저기엔 연구자들이 영감을 얻도록 예술 작품이 설치돼 있다.[사진 돌비]

돌비는 음반 녹음과정의 잡음을 제거하는 기술로 음반 시장을 장악한 후 영화 입체음향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시초는 영화 ‘스타워즈’다. 1977년 5월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극장에서 열린 영화 스타워즈 시사회는 영화판을 흔든 사건이었다. 관객들은 자신의 옆으로 비행체가 날아가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영화가 끝나자 시사회장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10분 넘게 가득 찼다. 이 영화는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로 믹싱한 최초의 작품이다.

돌비는 이어 돌비 서라운드, 돌비 디지털(5.1 채널, 7.1 채널 등)과 돌비 애트모스 같은 기술을 연이어 선보였다. 이런 돌비의 입체 음향 기술은 글로벌 표준으로 통했다. 돌비 애트모스는 2012년 내놨다. 브렛 크로켓 음향 기술연구부문 부사장은 “우리는 7.1채널, 10.1채널처럼 채널 수를 늘리는 경쟁을 그만해야 할 때라고 결정했다. 4년 간의 연구 끝에 애트모스 기술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의 키워드는 ‘사물의 객체화(object)’다. 전면에 배치된 서브 우퍼, 벽면의 서라운드 스피커, 천장의 오버헤드 스피커를 통해 각 개체의 위치에 맞게 소리가 구현된다. 사물이 움직이는 궤적대로 음향도 움직인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같은 해외 영화들을 포함해 ‘군도: 민란의 시대’ ‘암살’ 같은 국내 영화들이 돌비 애트모스로 제작됐다. 세계 2000여 개 영화관이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도 롯데시네마 등 30개관이 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2014년 돌비는 가정용 ‘돌비 애트모스 홈’을 내놓고 소비재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8월 삼성전자는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적용한 사운드바(긴 막대기 형태의 스피커) ‘HW-K950’을 출시했고, 야마하도 YSP-5600 사운드바를 출시했다. 애트모스 기술이 적용된 태블릿과 스마트폰의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돌비는 B2B 시장을 장악한 후 B2C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 음향업계 관계자는 “음향의 기술 표준은 ‘호환되는 콘텐트가 얼마나 많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중에서도 영화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DVD, PC, 비디오 게임, 모바일 기기 같은 세계 100억 개 이상의 홈엔터테인먼트 기기에 돌비의 ‘더블디 마크’가 붙어 있는 이유다.

돌비의 2015년 매출은 9억6740만 달러(약 1조1300억원), 이중 90% 이상이 라이선스 비로 벌어들이는 돈이다. 기기에 돌비의 기술이 채택되면 기기 하나당 라이선스를 받는다. 삼성과 LG등은 매년 돌비에 수천 억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한국의 돌비’를 표방하며 영화 입체음향 시장에 뛰어든 소닉티어 박승민 대표는 “내년 2월부터 세계 최초로 한국서 UHD 시험방송을 하는데, 국내 음향 업체들이 돌비와 같은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채택한 UHD 방송의 음향 표준은 MPEG H 3D Audio다. 쉽게 말해 멀티미디어 국제표준화 단체인 MPEG이 다음 세대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 표준으로 10.2 채널의 입체 오디오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MPEG H 3D Audio 코덱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삼성, 퀄컴 등이 주도해 개발한 국내 기술이다.

미국은 내년 돌비 애트모스와 MPEG H 3D Audio 중에서 UHD 방송의 음향 표준을 내년에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입체음향 시장을 장악한 돌비가 UHD 방송에서도 그 힘을 이어갈 지 주목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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