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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물결은 설움에 겨워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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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오름기행 <16> 송악산

송악산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탐방로를 다 걸으면 송악산 둘레길이 완성된다.

송악산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탐방로를 다 걸으면 송악산 둘레길이 완성된다.
송악산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탐방로를 다 걸으면 송악산 둘레길이 완성된다.

송악산만큼 흉터가 깊이 팬 오름도 없다. 일제의 군사시설을 가장 많이 안고 사는 오름이 송악산이고, 민족상잔의 쓰린 역사를 제 몸에 새기고 사는 오름이 송악산이다. 저 먼 남쪽 바다에서부터 달려온 파도가 바다와 맞닿은 송악산의 옆구리에 부딪친다. 그리고 목을 놓고 통곡한다. 해 질 녘 절벽 난간에 기대 한참을 물결 우는 소리를 듣고 왔다.

물결 우는 오름

송악산이 바다와 맞닿은 면은 가파르고 아찔하다. 절벽 위에 서 있으면 물결이 부딪쳐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송악산이 바다와 맞닿은 면은 가파르고 아찔하다. 절벽 위에 서 있으면 물결이 부딪쳐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송악산(104m)의 옛 이름이 절울이오름이다. 절(물결)이 우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파도가 센 오름이라는 뜻이다. 오름과 파도는 어울리는 쌍이 아니지만, 송악산만큼은 예외다. 마라도 바다를 향해 비쭉 튀어나와 있어 언뜻 코지(곶)가 연상된다. 오름 아랫자락이 그대로 해안 절벽을 이룬다. 앞바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면 송악산은 거대한 성처럼 우뚝 서 있다.

송악산 정산부는 울퉁불퉁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 초원에 제주 사람은 말을 풀어놓고 키웠다.

송악산 정산부는 울퉁불퉁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 초원에 제주 사람은 말을 풀어놓고 키웠다.

송악산이 바다와 맞닿은 면은 직각의 절벽을 이루지만, 봉긋 솟은 분화구 주변은 넓고 완만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초원에 알오름이 수두룩히 돋아 있어 옛날 제주 사람은 송악산을 “99봉”이라고 불렀다. 봉우리가 99개라는 뜻일 터인데,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알오름들이 낮고 평평하다. 울퉁불퉁한 언덕배기 초원이라고 부르는 편이 되레 적절해 보인다. 아무튼, 이 해안 절벽 위 초원에 제주 사람은 예부터 말을 풀어놓고 길렀다. 지금은 초원에 풀어놓은 말을 배경으로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다.

송악산 정상부. 탐방로가 폐쇄돼 정상에는 오를 수 없다. 마침 만개한 억새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송악산 정상부. 탐방로가 폐쇄돼 정상에는 오를 수 없다. 마침 만개한 억새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송악산 정상에 오르면 절경이 펼쳐진다. 둘레 400m 깊이 69m의 거대한 분화구가 옥빛 바다를 배경으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다.  송악산은 해발 104m의 낮은 오름이지만 바다와 바투 붙어 있어 정상에서 느끼는 높이와 높이에서 비롯한 시야가 남다르다. 그러나 이 절경을 한동안은 마주할 수 없다. 지난해 8월부터 오는 2020년 7월 31일까지 송악산 정상 탐방로와 정상으로 난 탐방로가 모두 폐쇄됐다. 예부터 대표적인 관광명소였던 데다 제주올레 10코스가 통과하면서 최근 몇 년 송악산은 엄청난 인파를 받아내야 했다. 자연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해안 절벽이 계속 무너져 안전사고의 위험이 더해졌다.

송악산 정상부. 탐방로가 폐쇄돼 정상에는 오를 수 없다. 마침 만개한 억새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송악산 정상부. 탐방로가 폐쇄돼 정상에는 오를 수 없다. 마침 만개한 억새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송악산은 정말 위험해 보였다. 해안 절벽 곳곳에서 허물어진 흔적을 목격했는데 송악산 남쪽 해안의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송악산 남쪽 아랫도리에는 일본군 진지동굴 15개가 바다와 나란히 누워 있다. 쪽빛 바다와 붉은 절벽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해안 동굴은, 동굴의 정체 또는 용도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송악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노릇을 했다. 수많은 신혼부부가 이 동굴들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었고, 온갖 드라마와 영화에도 숱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두도 내면 안 될 일이 됐다. 해안 어귀에서부터 진입이 통제됐다. 해안 절벽 일부가 크게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미 동굴 네댓 개는 절벽이 허물어져 입구가 막혔다.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난 현장처럼 위태위태하고 흉물스럽다.

한때 송악산의 대표 명소로 통했던 일본군 해안동굴. 그러나 절벽이 무너져 내린 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됐다.

한때 송악산의 대표 명소로 통했던 일본군 해안동굴. 그러나 절벽이 무너져 내린 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됐다.

그래도 송악산에 드는 발걸음은 여전하다. 배낭 메고 터벅터벅 길을 걷는 올레꾼도 여전하고, 우르르 몰려왔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중국인 관광객도 여전하다. 정상도 못 올라가고 해안 진지동굴에도 못 들어가지만, 송악산은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탐방로만 걷고 나와도 송악산은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탐방로가 쉽고 완만해 걷는 부담도 없다. 해안을 따라 송악산 둘레를 한 바퀴 다 돌아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왕이면 오후에 송악산을 들르시라 권한다. 송악산은 일몰도 곱다.

동굴과 웅덩이
띄엄띄엄 일본군 격납고가 들어선 알뜨르 감자밭. 감자밭 뒤로 산방산이 우뚝 서 있다.

띄엄띄엄 일본군 격납고가 들어선 알뜨르 감자밭. 감자밭 뒤로 산방산이 우뚝 서 있다.

송악산이야말로 천혜의 관광자원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절경에는 혹독한 역사가 얹혀져 있다. 1945년 패망 직전의 일본은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당시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군이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때 일본군은 섬 곳곳에 군사시설을 건설했다(정확히 말하면 동원된 제주도민이 건설했다). 지금도 제주의 여러 오름에서 일본군의 흔적을 목격할 수 있는데, 송악산 자락에 가장 많은 수의 일본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송악산 능선과 해안에서 발견된 진지동굴이 60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일본군 시설이 앞서 언급한 해안 동굴이다. 원래부터 있었던 동굴이 아니라 일본군이 아니 동원된 제주 사람이 목숨과 바꿔가며 뚫은 동굴이다. 해안 동굴 15개는 일본군의 자살특공대 가이텐(回天)의 기지였다. 가이텐은 인간어뢰다. 사람이 어뢰에 탑승해 목표물까지 조종한 다음 타격하는 자살 무기다. 가미카제(神風)가 자살 비행기면 가이텐은 자살 어뢰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바람에 송악산 가이텐은 출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뜨르에는 일본군 전투기 격납고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옛날 잠자리 비행기 모형을 설치한 격납고의 모습이다.

알뜨르에는 일본군 전투기 격납고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옛날 잠자리 비행기 모형을 설치한 격납고의 모습이다.

송악산과 초원으로 이어진 섯알오름(40.7m) 근처에는 일본군 비행장이 있다. 이름하여 알뜨르 비행장이다. 일본군이 알뜨르(아랫동산)에 건설한 격납고는 모두 38기였는데 현재는 19기가 보존돼 있고 1기는 잔재만 남아 있다. 이름하여 아까톰보(あかとんぼㆍ고추잠자리) 전투기를 숨기던 곳으로, 격납고 하나가 폭 약 20m 높이 약 3m 길이 약 10m에 이른다. 감자ㆍ고구마ㆍ배추 따위가 뒤덮은 넓고 푸른 채소밭 곳곳에 납작 엎드린 격낙고가 드문드문 박히 풍경은 낯설고 기이하다. 이 넓은 밭이 그 시절에는 폭탄 실은 전투기의 활주로로 쓰였다니 가슴이 서늘하다. 실제로 일본군 전투기 600기가 이 활주로를 출발해 중국 난징(南京)을 폭격했다고 한다. 알뜨르 비행장의 면적은 2.64㎢에 이른다.

섯알오름 아래에 설치된 일본군 동굴진지. 송악산 일대에만 60개가 넘는 진지동굴이 있다.

섯알오름 아래에 설치된 일본군 동굴진지. 송악산 일대에만 60개가 넘는 진지동굴이 있다.

일본군의 흔적을 목격하는 일이 화가 난다면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의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섯알오름 북쪽 자락에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검은 비석 뒤에 웅덩이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이 웅덩이가 끔찍한 역사의 현장이다. 1950년 8월 20일 모슬포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 계엄군이 불순분자 색출을 명목으로 제주도민 210명을 예비검속으로 검거했다. 예비검속이란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미리 검거하는 것으로 일제의 잔재다. 계엄군은 양민 210명을 법적 절차 없이 한밤중에 총살했고 한 명씩 웅덩이에 던졌다. 일부 시신은 유족이 바로 수습했으나, 시신 대부분은 그대로 내버려졌다. 계엄군이 웅덩이 일대를 출입금지지역으로 지정해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 웅덩이 두 곳에 한때 210명이 암매장돼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양민학살의 현장 중 한 곳이다.

이 웅덩이 두 곳에 한때 210명이 암매장돼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양민학살의 현장 중 한 곳이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유족의 끈질긴 탄원에 정부가 출입금지지역을 해제했다. 마침내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으나 유골이 서로 엉켜 있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유족들은 희생자를 한 조상으로 함께 모시기로 하고 유골만 추려 132기의 봉분을 만들었다. 그 공동묘지의 이름이 ‘백 할아버지 한 무덤’이라는 뜻의 백조일손묘(百祖一孫墓)다. 섯알오름 근처에 있다. 섯알오름 웅덩이와 백조일손묘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양민학살의 현장 중 하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에는 슬픔이 있다. 여행을 업으로 살다 알게 된 세상의 이치다. 유난히 하수상한 이 계절, 송악산에 올라 바다 우는 소리를 듣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상에는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더 큰 상처가 많다.

여행정보

모슬포 대방어. 모슬포에서는 무게가 3㎏ 이상이면 대방어라 부른다. 방어도 큰놈이 훨씬 맛있고 훨씬 비싸다

모슬포 대방어. 모슬포에서는 무게가 3㎏ 이상이면 대방어라 부른다. 방어도 큰놈이 훨씬 맛있고 훨씬 비싸다.

송악산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모슬포가 있다. 모슬포에서 유명한 생선 두 가지가 있다. 자리돔과 방어다. 모슬포 자리돔은 크고 억세기로 유명하다. 모슬포 앞바다가 거칠어 모슬포 연안바다에 사는 자리돔도 크기도 크고 힘이 좋단다. 앞바다가 얌전해 자리돔도 작은 보목에서는 자리돔을 주로 물회로 먹지만 모슬포에서는 자리돔을 주로 구워서 먹는 까닭이다. 또 다른 모슬포의 자랑거리다 방어다. 그것도 대(大)방어다. 보통 3㎏ 이상 되는 방어를 대방어라 부른다. 모슬포에서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방어를 잡는다. 여름에도 방어가 올라오곤 하지만 여름 방어는 살에 기름이 없어 맛이 떨어진다. 모슬포에서 현재 ‘최남단 방어축제(bangeofestival.com)’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시작했고 오는 20일 끝난다. 예년보다 여름이 길어 아직 방어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지만 지난해 20만 명이 다녀갔다는 지역 축제답게 프로그램은 풍성하다. 방어 맨손 잡기 체험(참가비 1만원), 어시상 선상 경매(참가비 없음) 등이 대표 프로그램이다.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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