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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건강한 韓中관계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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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이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 4월 베이징(北京)에서 미국과 북한의 회담을 주선했고 최근엔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의 친서가 평양과 워싱턴을 오갔다. 1994년 봄과는 영 딴판이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나 북한 핵문제는 당사자 간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자세였다. 그런 중국이 요즘 들어 태도를 바꾼 가장 큰 이유는 '학습효과'가 아닐까 한다.

94년 중국은 미국이 잠시나마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기로 작정했었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북한이 무력침공을 당하면 중국은 지체없이 군사원조를 해야 한다. 양국이 61년에 맺은 상호원조 조약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통해 한다면 하는 무모함(?)을 과시했다. 중국은 그런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설사 미국의 무력행사를 못본 체 한다해도 동북3성으로 몰려들 북한 난민은 또 어쩔 것인가. 뿐만 아니라 중국은 빈부격차의 해소나 정치민주화 요구를 억제하려면 경제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국제환경이 절실하다.

94년과는 다른 게 또 있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따라서 중국도 더 이상 남의 일로 미룰 수 없게 됐다. 북한핵은 중국도 그 사정권 안에 둘 것이다. 또 동북아의 핵무장 도미노 현상도 초래할 것이다. 대만이 핵을 갖겠다고 나서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중국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유야 어떻든 중국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우선 지나치게 경제에 쏠려 있는 한.중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해 한.중 간의 교역규모는 4백11억달러였다. 중국은 2001년 이미 일본을 넘어섰고, 올해 말엔 미국을 제치고 제1의 수출시장이 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인은 2백12만명이, 중국인은 54만명이 상대국을 방문했다. 반면 지난해 중국과 북한의 교역량은 한.중의 55분의 1 수준인, 7억4천만달러에 불과했다. 이 중 중국이 북한에 수출한 식량과 공산품이 5억7천3백만달러어치였다.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는 지난해 한.중.일 3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북한 핵문제를 계기로 정치 군사적인 연대를 가시화할 수 있게 된다면 한.중관계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베이징이 뜻하는 대로 북한 핵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이 열리면 북한에 불가침을 보장해주는 것 이외에 경제지원 문제도 거론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했듯이 이번엔 중국도 일정부분 대북 경제지원을 떠맡지 않을 수 없다. 그럴 경우 일본 자본의 북한 진출을 견제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당사자로 참여해 해결책이 마련된다면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를 무시했듯이 또다시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유일한 동맹국마저 적대시하는 외교를 선택할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말했듯이 이번엔 항구적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호주의 폴 키팅 전 총리는 최근 한 연설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대안 세력은 중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문제의 처리는 중국의 총체적 역량을 가늠해줄 첫 무대가 될 것이다.

이재학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