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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왕 사부'라 불리는 남자. 왕육성 셰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왕육성 셰프를 인터뷰한다는 통보를 받은 게 지난 9월 초였다.

그 통보에 오래전의 일화가 떠올랐다.

몇몇 지인들과 식사자리에서였다.

당시 그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 대표였다.

그런 그가 인생 2막을 꿈꾸고 있다며 말을 꺼냈다.

“이젠 호텔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주 조그만 중식당을 해볼까 합니다. 호텔급 요리를 싼 가격에 제공하는 그런 조그만 식당이요. 그간 쌓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또 여건이 익으면 제자들에게 식당 맡기면서 쉬엄쉬엄 살랍니다. 그간 저는 많이 얻었잖습니까. 이젠 나눠주고 싶습니다.”

사실 그저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려니 생각했다.

어떻게 이룬 삶인가!

그는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자장면 배달로 시작하여 호텔 중식당의 대표에 오른 사람이다.

40여 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룬 삶이니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줄 앞에서 다섯 번째가 왕육성 셰프, 오른쪽 줄 제일 뒤가 이연복 셰프

왼쪽 줄 앞에서 다섯 번째가 왕육성 셰프, 오른쪽 줄 제일 뒤가 이연복 셰프

더구나 그는 우리나라 중화요리계의 대가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게 2008년이었다.

우리나라 중화요리 4대 문파의 대가를 한자리에 모아 사진을 찍을 때였다.

그는 그때 모인 14명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목란의 이연복 셰프도 함께였다.

그때 이연복 셰프는 왕 대표를 ‘왕 사부’라 호칭했었다.

이 셰프만 그리 호칭한 게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그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거의 다 그를 ‘왕 사부’라 호칭했었다.

‘왕 사부’라 불리며 호텔 중식당의 대표인 그가 조그만 중식당을 하겠다고 하니 쉽사리 믿기 어려웠다.

그러고는 그의 이야기를 잊었다.

2013년 연말이었다.

그가 식사나 하자며 지인들을 모았다.

그 자리에서 말했다.

“호텔을 그만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좀 쉬면서 예전에 말했던 대로 인생 2막을 준비할 겁니다.”

그냥 하는 이야기려니 했는데 정말 그렇게 해버린 것이었다.

참 희한한 사람이다 싶었다.

2015년 그가 ‘진진(津津)’이라는 중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텔을 그만둔 후 거의 1년 만이었다.

오래지 않아 2호점을 열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게다가 예약하기도 힘들 정도로 유명 식당이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최근엔 음식전문가 100인이 꼽은 국내 대표 맛집(KOREAT 선정) 3위에 선정되었다고도 했다.

믿기 어려웠던 그의 인생 2막 이야기가 하나 둘 실현 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9월의 인터뷰 통보 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였다.

그의 인생 2막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였다.

진진을 개업한 지 거의 20개월만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진진 1호점을 방문했다.

마침 쉬는 날이었다.

왕 셰프가 도착하기 전이라 진진의 요모조모를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그의 인생 2막을 시작한 곳, 아담했다.

조그마한 식당을 열겠다고 했던 그의 말 그대로였다.

주방도 둘러봤다.

그간 기자로 살면서 수많은 중식당 촬영을 했었다.

중식당의 공통점은 기름때였다.

기름과 불로 조리하니 어디건 기름이 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튄 기름에 세월의 더께가 입혀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진진의 주방은 깔끔했다.

누구나 주방을 볼 수 있는 개방형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거리낌이 없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이 또한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취재기자가 미리 내게 부탁했었다.

그의 손톱깎이를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40여 년 요리인생을 대표하는 그의 애장품이 손톱깎이라고 했다.

1986년 코리아나호텔에 들어갔을 때 그곳 동료 들이 선물해준 것을 여태 지니고 수시로 깎는다는 것이었다.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을 내세우는 그의 철학이 손톱깎이 담겨 있듯 주방 또한 그랬다.

메뉴를 살펴봤다.

오향냉채·멘보샤·깐풍기·대게살볶음·마파두부 등의 일품요리만 있었다.

가격이 대개 1만~2만원대였다.

비싸지 않게 호텔 요리를 팔겠다고 했던 그의 말 그대로였다.

특이하게도 자장면과 탕수육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주변 음식점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그리했다는 것이었다.

곳곳을 살피고 있을 때 왕 셰프가 도착했다.

“꿈 꾼대로 되고 계십니까?”

“그 길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3호점까지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4호점도 계획 중인가요?”

“마구잡이로 늘려가는 게 아니고 양성 중인 제자에게 믿고 맡길 수 있을 때 그리할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제자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제자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셰프 왕육성’이 아닌 제자를 키우고 물려 주는 ‘사부 왕육성’이 메시지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올 때 지난해 이연복 셰프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가라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 셰프가 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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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선배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죠. 후배들을 괄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왕육성 선배는 달랐습니다. 모든 걸 베푸는 그런 사람입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미쉐린 가이드 서울

지난주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발간되었다.

거기에 진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구나 별 하나를 받았다.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책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40년 이상 중식의 매력을 국내에 전파해온 베테랑 왕육성 셰프의 서교동 중식 전문점 진진은 그의 이름을 내 건 첫 번째 레스토랑으로 2015년 2호점을 오픈했고, 올해 6월에 3호점인 진진가연도 공식 오픈했다. 본점은 오로지 저녁 시간에만 운영되며, 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영업이 일찍 종료되기도 한다. 다양한 메뉴 중 다진 새우 살을 식빵 두 조각 사이에 발라 튀겨낸 멘보샤와 마파두부는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하여 늘 문전성시를 이루니 예약은 필수다.]

그의 소감이 듣고 싶어 통화를 했다.

“큰 영광입니다. 제 생각에는 주위 분들의 지지 덕분인 거 같습니다.”

“너무 겸손하신 표현 인데요.”

“정말 그분들 덕입니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닙니다. 귀로 먼저 먹습니다. 입소문으로 침을 먼저 삼키죠. 그리고 눈으로 먹습니다. 맛깔스러움을 보는 거죠. 그 다음은 코로 먹습니다. 향기로 좋은 맛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이 입이죠. 귀, 눈, 코로 이미 먹은 터니 입맛은 50퍼센트 먹고 들어가는 셈입니다. 그러니 주위 분들의 지지 덕분이 맞는 거죠. ”

“주변에서 ‘왕 사부’라 호칭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으시잖습니까?”

“아유, 아닙니다. 다만 누구를 대해도 ‘주는 게 받는 거다’고 생각합니다. 손님에게도 마찬가지 이구요. 지금 이 가게로 그것을 증명해보려 하는 건데요. 지금에서야 보니 제 믿음대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은 것도 주위 사람의 지지 덕이라고 했다.

손님이건 제자이건 나누어 주는 게 사는 도리라고 했다.

그 믿음대로 그의 인생 2막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호텔을 떠나 조그만 식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던 게 민망했다.

그의 인생 2막, 진정한 ‘왕 사부’로 가는 길이라는 여겨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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