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00만 시민 평화적 촛불집회는 새 시대 향한 명예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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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지난 주말 ‘11·12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 100만 명(경찰 추산은 26만 명)은 모두가 승자였다. 신성한 헌법의 가치를 자기 손으로 부정한 최악의 대통령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성숙한 의식을 결집하며 시민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와 중고생을 포함한 남녀노소가 한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청와대 턱 앞까지 행진했지만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했다.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군중이 한마음으로 평화 행진을 한 것은 드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의 퇴행에 분노한 건강한 시민의식이 찬란한 빛을 발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광우병 집회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청와대 앞 율곡로까지 행진을 허용하고, 시민들은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폭력 충돌을 우려한 시민들은 작은 일탈이라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평화’를 외쳤고 경찰도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국민의 힘이다. 헌법의 수호자라는 본분을 잊고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 일당에게 국민의 주권을 넘긴 대통령을 향해 “이게 나라냐”며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이게 바로 국민이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스스로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바닥의 촛농까지 긁어내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제 100만 집회가 있었냐는 듯 어제 광화문 일대는 평온했고 일상을 되찾았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헌법(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다. 국민은 어제 분노를 절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해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역주행을 준엄하게 심판한 100만 시민의 평화적인 촛불 시위는 새 시대를 향한 역사적인 명예혁명의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