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제작자 인터뷰 릴레이① '부산행' 제작한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중앙일보

입력 2016.11.13 00:01

업데이트 2016.11.29 15:34

2016년은 한국 영화계에서 다양한 장르 영화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해였다. 좀비영화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 코미디를 곁들인 범죄영화 ‘검사외전’(2월 3일 개봉, 이일형 감독), 전쟁영화 ‘인천상륙작전’(7월 27일 개봉, 이재한 감독), 코미디영화 ‘럭키’(10월 13일 개봉, 이계벽 감독) 등이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모두 개성 강한 제작자들이 뚝심 있게 밀어붙여 빛을 본 영화들이다.

magazine M은 올해 흥행작을 ‘빚어낸’ 제작자를 차례차례 만나기로 했다. 이들이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기 위해 꿈꾸고 도전한 것은 무엇이며, 지금 그들이 어떤 차기작을 구상 중인지 듣기 위해서다. 그 첫 번째 주자로 레드피터 이동하(47) 대표를 만났다. ‘좀비’라는 소재를 재난·가족 드라마 장르에 접목한, 2016년 첫 ‘1000만 영화’인 ‘부산행’의 제작자다.

‘부산행’은 2014년 3월 설립된 레드피터의 창립작. 이 대표는 “‘투자사에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장르 영화의 길을 열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가 뜻밖에 큰 성공을 거뒀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행’은 그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으며, 이 대표가 그리는 새로운 영화는 무엇일까. 

-창립작 ‘부산행’으로, 그것도 국내에서는 ‘흥행 리스크가 크다’고 여겨진 좀비영화로 ‘1000만 영화’가 됐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아니다. ‘관객 400만~500만 명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모두 연상호 감독이 잘한 덕분이다. 일정·예산 등 제작자가 감독에게 요청할 부분들을 먼저 고민해 줬다. 장면마다 흥행을 고려한 요소를 직접 넣기도 하고(웃음). ‘부산행’ 관객 분석을 하니 10~20대 호응이 크더라. 더 뿌듯한 것은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이다. 홍콩·대만·싱가포르·베트남·필리핀 등 중국(개봉 시기 미정)과 일본(2017년 개봉 예정)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도 역대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흥행했다. 추후 정확하게 정산해 봐야겠지만, 해외에서만 100억원가량 벌어들였다. 이렇게 큰 성과를 내어 기쁘다.”

-좀비 소재를 가족 드라마와 같은 보편적 감수성에 녹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좀비를 B급 영화 소재로 인지하던 관객에게 재난·가족 드라마 형식의 ‘부산행’이 ‘웰메이드 좀비영화’로 다가간 것 같다. 좀비영화는 2012년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무서운 이야기’(정범식·홍지영·김곡·김선·임대웅 감독) 중 단편 ‘앰뷸런스’(김곡·김선 감독)에서 접한 경험이 있다. 그때 좀비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다.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준비할 것이 많은 장르더라. 이후 좀비가 소재로 나오는 여러 시나리오를 접했는데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호러의 하위 장르로 다가선 탓에, 총제작비 15~20억원 사이로 기획된 아이템이 대부분이었다. ‘월드워Z’(2013, 마크 포스터 감독)처럼 지금 시대의 공기를 담아낸 보편적 이야기로 좀비영화를 풀어 보고 싶었다.”

-‘부산행 KTX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 그리고 좀비 소녀가 탄다’는 시놉시스 한 줄이 ‘부산행’의 시작이었다고.
“2011년 11월 ‘돼지의 왕’이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돼 한창 호평받았을 무렵이었다. 그때 박정범 감독 소개로 연 감독을 만났다. ‘돼지의 왕’은 집중력 높은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그린 방식이 훌륭했다. 연 감독과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여러 아이템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 감독이 이 시놉시스를 가져왔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 장준환 감독, 이하 ‘화이’)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주석 작가도 합류했다. 그렇게 셋이서 회의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끝없는 인격 모독과 싸움질로 점철된 시간’이랄까(웃음).”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이전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작품을 살펴보면,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 ‘여행자’(2009, 우니 르콩트 감독), 이창동 감독의 ‘시’(2010) 등 상업성보다 예술성에 집중한 영화가 많았다. 레드피터를 세운 뒤 ‘부산행’을 만들었는데, 방향을 선회한 건가.
“그렇지는 않다. 한때 ‘시’와 ‘여행자’가 연이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깐느 PD’로 불리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이후 ‘고양이: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2011, 변승욱 감독) 등 호러영화도 맡았다. 좋아하는 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특정 장르를 선호하기보다 각 영화의 장점을 발견해 완성도 있게 만드는 작업이 즐겁다. 요즘은 뒤늦게 장르 영화의 매력을 느껴, 이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차기작은 연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염력’이다. 이번에는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제는 국내 관객도 다양한 장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SF·판타지 등 한국 영화계의 비주류로 생각해 온 장르까지 말이다. 지금의 20~30대는 일상적으로 웹툰을 보며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산과 같은 현실적 문제들이 얽혀 있으니, 영화 제작으로 빠르게 이어지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다양한 장르 영화가 흥행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행’의 성공도 고무적이다. 배급 시사 후 관계자들은 ‘아무리 흥행해도 관객 700~800만 명 정도에 그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보통 ‘1000만 영화’가 되려면 중·장년층까지 끌어모을 코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비 소재의 영화라도 개성을 포기하지 않고 보편적 감정을 끌어낼 수 있으면, 보다 다양한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동하 대표의 주요 필모그래피
‘시’

프로듀서 | 이창동 감독 |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 2010
‘시작(詩作)’이라는 문학적 행위를 통해 속죄와 구원을 이야기한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삶과 죄를 주제로 다루는, 더욱 깊어진 이 감독의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이 대표는 ‘여행자’로 파인하우스와 인연을 맺으며 ‘시’의 프로듀서도 맡았다.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프로듀서 | 장준환 감독 | 김윤석, 여진구, 조진웅 | 2013
다섯 명의 범죄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 화이(여진구)는 괴물 환상을 본다. 화이에게 아버지로 군림한 석태(김윤석)는 ‘괴물이 두려우면 괴물이 되라’고 가르친다. 이 대표는 “장준환 감독의 상상력이 스릴러 장르의 사실적 표현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 점이 흥미로워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염력’(준비 중)

제작 | 연상호 감독 | 심은경, 류승룡 | 2017년 5월 크랭크인 예정
우연히 초능력이 생긴 평범한 중년 가장 석헌(류승룡). 그가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린 딸(심은경)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류승룡과 심은경은 이미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로 호흡을 맡춘 바 있다. 현재 시나리오를 수정·보완하고 있으며, 주요 스태프를 비롯해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도 캐스팅 진행 중이다.

-제작자로서 ‘좋은 아이템, 좋은 영화의 조건’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동시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인가’ ‘현시대에 만들어야 하는 영화인가’를 늘 따져 본다. 같은 이야기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어떤 감독·배우·스태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도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 방식으로 그리면 남루해 보이는 것처럼.”

-지난 5~6년간 감독이 투자·배급사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렇다 보니 제작자의 역할이 줄어든 듯하다.
“30대에 파인하우스 이준동 대표,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 등 쟁쟁한 선배들과 일했다. 그 시간 동안 ‘제작자는 영화의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투자사의 상업적 요구와 감독의 창작 욕구를 두루 조율하며 영화의 큰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제작자의 역할이다. 제작자는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나간다. 감독만큼 그 영화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투자사에 작품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감독의 연출 의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방어할 수 있다. 제작자 없이 작업하는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며 ‘이 영화가 대중적일까’라는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 같더라.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색을 죽이며 시나리오를 완성할 가능성이 높은 거다. 투자·배급사는 각각의 감독에게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해 감독 관리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제작 과정 혹은 흥행 결과에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을 것 같다.
“‘남과 여’(2월 25일 개봉, 이윤기 감독)가 그랬다. 2014년 ‘부산행’ ‘서울역’(8월 17일 개봉, 연상호 감독) 시나리오 작업 도중 오정완 대표로부터 프로듀서 의뢰를 받아 참여했다. 원래 프리프로덕션이나 촬영 기간에 아주 밀착해 관여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저조한 흥행 결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남과 여’를 통해, 시나리오와 콘티를 다듬는 프리프로덕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요즘 신인 감독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제작자’로 꼽는다더라. 신인 감독 및 작가의 시나리오를 볼 때 중시하는 점은.
“자기 색깔이 담긴 시나리오인지 본다. 그만이 쓸 수 있는 대사 한 줄, 독특하고 입체적인 캐릭터 등 여러 요소에서 감흥을 얻는다. 이런 경우 상업적이지 않은 이야기라도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신예 감독이 있다면.
“많다.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5월 4일 개봉)의 조성희 감독, ‘좋은 친구들’(2014)의 이도윤 감독, ‘더 테러 라이브’(2013)의 김병우 감독 등. ‘광화문시네마’ 소속 감독들의 작품도 흥미롭게 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영화협의회에 몸담았고, 프랑스에서 철학(파리8대학에서 철학을, 파리3대학 대학원에서 철학과 영화를 전공했다)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력이 특이한 편인데.
“스무 살 때 ‘파리 텍사스’(1984, 빔 벤더스 감독)를 보고 영화 만들기를 꿈꿨다. 스물네 살에 파리로 건너가 9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지만, 언제나 ‘한국에 돌아가 영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학 시절 ‘인터뷰’(2000, 변혁 감독)에 프랑스 촬영 현지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그렇게 상업영화와 인연이 닿았고, 2002년 귀국해 ‘여행자’ 프로듀서를 맡으며 파인하우스와 일하게 됐다.”

이동하 대표가 말하는 영화 제작 원칙
1 프리프로덕션 완성도가 영화의 생명이다

이 대표가 가장 지양하는 것은 “제작사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경우”다. 그건 빚을 내어 창립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사가 맞닥뜨리는 딜레마다.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쉽게 말해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에 찍는 것”이다. 시나리오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 혹은 제작자가 보기에 아직 구성적 빈틈이 많은데, 투자를 받았으니 일단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시나리오의 빈틈은 촬영 현장에서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아쉽지만 우선 찍고 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작품의 촬영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2 감독과의 의사소통이 우선이다
이 대표가 감독과 의사소통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있다. 바로 “제작자로서의 요구 사항을 꼭 ‘미리’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크랭크인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어떤 장면을 고쳐 보자”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감독도 내 요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시나리오에 깊이 몰두한 감독일수록 스스로 그려 놓은 그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주변 의견에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제작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를 언제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는 일. 이 대표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처럼 시나리오 단계부터 마음에 걸렸던 문제는, 촬영 도중은 물론이고 후반 작업이 진행될 때까지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파리에서의 시간이 영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큰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다양한 영화의 장점을 폭넓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또, 기회가 닿으면 ‘글로벌 공동 제작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부산행’ 이후 넷플릭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등 외국 배급사들이 연 감독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마치 아시아의 록 스타 같다(웃음).”

-앞으로도 계속 연 감독과 함께할 계획인가.
“아마 호시탐탐 나를 떠나려 준비하고 있을 듯한데(웃음). 어떤 감독이든 좋은 콘텐트를 가진 제작사에게 제안받으면 도전해야 한다. 연출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가져야 하니까. 제작자도 마찬가지다. 성향이 잘 맞는 여러 감독과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 연 감독과는 나이 들어 또다시 함께 작업해도 되고(웃음).”

-레드피터의 목표가 있다면.
“원래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영화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구별된다. 같은 이야기라도 새롭게 바라보는, 그래서 관객이 색다르고 신선하게 느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레드피터’라는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따왔다. 스스로 인간인 줄 알았던 원숭이가 인간들 앞에서 자기반성하는 이야기다. 그 작품처럼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ID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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