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현대車 파업여파 부도 맞은 한목은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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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광주시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로 지난달 30일 부도처리된 ㈜경원하이텍의 한목은(韓牧殷.41.사진)사장은 "부도낸 죄인인데…"라며 인터뷰를 꺼리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韓사장은 "이윤 폭이 적어 늘 자금압박을 받는 부품업체는 납품 물량이 급격히 줄면 견뎌내기 힘들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금융권 대출 문턱은 오히려 높아지기 때문에 결국 부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동차 패널.섀시 등을 생산해 기아자동차(80%)와 현대자동차(10%) 등에 납품해 왔다. 비정규직 사원을 포함해 1백30여명의 임.직원으로 지난해 1백2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 들어서도 5월까지는 매월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6월 매출이 10억원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달엔 완성차 업체의 파업까지 겹쳐 결국 회사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됐다.

주납품처인 기아차 광주공장이 지난달 2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이어 부분파업(23~25일), 토요 휴무(26일), 전 직원 휴가(7월 28일~8월 1일)에 들어감으로써 7월 매출이 평소보다 40% 이상 급감한 게 치명적이었다.

韓사장은 "납품업체는 주간 단위로 대금을 받기 때문에 차 생산라인이 멈춰 서면 어려움이 금방 닥쳐온다"며 "수많은 협력업체를 둔 대기업의 노조는 노동운동을 하더라도 협력업체 종사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헤아려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임금 동결을 받아들인 우리 노조를 대하다 대기업 노조의 주장을 듣다 보면 마치 다른 나라 얘기 같아 답답하고 암울한 생각이 든다"며 "대기업 근로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임금은 그들의 절반밖에 못 받는 납품업체 근로자의 고통과 비애를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韓사장은 부도 이전엔 연체 한번 없었으나 일시적인 자금경색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하소연할 데가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도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뒤지고, 모 은행장에게 e-메일을 보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부 지원책은 금융권을 찾아보라는 안내가 고작이었고, 금융권은 담보나 신용보증서 없이는 문턱을 넘어설 수 없었다.

어려움에 빠질 경우 도와주리라 여겨온 기아차는 "홀로 서라"며 발을 뺐단다. 그는 "아프다고, 곧 죽는다고 하소연했는데도 '중소기업 보호'를 외쳐온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 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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