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집 『접시꽃당신』|이상희<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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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접시꽃같이 지순한 아내를 암으로 잃고난후 비탄과 회한의 서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엮은 도종환씨의 시집 『접시꽃당신』은 4부로 되어 있다.
1부 『접시꽃 당신』에서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최초의느낌을, 2부 『인차리』에서는 묘소를 오가며 토해낸 그리움을, 3부 『적하리의 봄』에서는 이 모든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4부 『마늘밭에서』에서는 그 극복뒤에 시인이 어떤 자세로 어떤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가에 대한 내밀한 성찰을 담고있다.
우리민족에 익숙한 눈물의 서정이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고 진솔한 표현과 시인 특유의 가락이 합해져 다양한 독자층에 감동의 울림으로 전해진다. 그위에 다시 절망과 허무의 암초를 피해 오히려 세상일을 더욱 깊은 눈으로 바라보도록 부릅뜬 개안의 힘을 보임으로써 그 감동은 한층 격상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대로 제자신도 살아가려고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해서 항상 많은 생각을 하고있지요』
시인의 삶은 시의 삶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의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의 가락은 살아있으되 그끓는 물 같던 역사의식은 숨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 시집이 생각으로 쓴 시들이었다면 이번의 시들은 마음으로 썼다고 할수 있읍니다. 앞으로는 역사와 사람과 현실과 생각의 조화로움을 꾀한 시를 쓸것입니다. 얼마간 이런 서정시를 더 쓰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여러차례 보아온 사진에서보다는 슬픔의 부기가 많이 빠진듯 야윈 얼굴의 시인이 첫 한파로 팡팡 얼어붙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사랑으로 인해 꽝꽝 열어붙은 강물은/사람이 아니고는 다시 풀리지 않으리라/오직 한번 사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영원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눈에 보이지 않으나 확실히 살아있는 것들이/이 세상엔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언젠가 한번은 꼭다시 만나야 하는 그날/우리 서로 무릎을 꿇고 낯익은 눈물 닦아주며/기쁨과 서러움으로 조용히 손잡아야할/그때까지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하는 때문이다.」 <『인차리5』 중에서>
가장 먼저 앓는 자요, 오래 앓는 자, 깊이 앓는 자로서의 시인의 사사로운 비극이 온 매스컴과 출판계를 휩쓸고 지나는 동안 정작 시인 자신은 상당한 마음의 곤란을 겪고 있는 눈치였다. 시의 문학적 성가보다는 배경이야기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두고 소감을 묻자 쓸쓸하게 웃으면서 대답아닌 대답을 한다.
『글쓰는 사람들을 만나도 책이 많이 팔리는 얘기만을 하더군요.』
꺾인 꽃자리에 더 많은 가지를 피워올리는 코스모스이야기를 끝으로 옥천으로 떠나는 시인과 작별하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염천교를 혼자 건너가면서 바람에라도 하듯 그런 말을 건네고 싶었다. 여태껏 시로써만 자신의 삶을 다스려온 한 시인의 치열한 자기 고뇌앞에 더이상 마이크를 들이대는 무모함을 저질러서는 아니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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