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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얻어맞고 나서야 알게 되는 급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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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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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전 2국> ●·이세돌 9단 ○·랴오싱원 5단

7보(72~80)=중앙 72를 힐끗 쳐다본 이세돌은 73으로 하나 더 밀어간다. 짐이 돼버린 꼬리쯤은 떼버리겠다는 뜻일까. 아니다. 흑▲는 이미 활용을 끝내고 버린 돌이다. 어차피 버린다고 해도 흑? 두 점이 추가되는 것뿐이다. 백이 그 정도로 만족할 리도 없겠거니와 만일 그렇게 한다면 흑은 당장 77의 곳을 젖혀 백의 응수가 곤란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한 칸 뛴 76은 사냥감을 키우는, 지극히 당연한 행마인 것처럼 보였는데 실은, 이 수가 치명적인 완착이었다. 76으로는 ‘참고도’ 백1로 젖혀 먼저 흑의 타개를 강요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흑도 2, 4로 타개에 문제가 없지만 백의 리듬도 한결 편안해진다.

실전은, 76으로 한가하게(?) 포위망을 펼치는 바람에 77로 급소를 얻어맞았다. 별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얻어맞으면 불 같은 통증이 느껴지는 급소가 있는데 77이 바로 그런 곳이다. 얻어맞는 순간 랴오싱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다. 맞고 나서야 거기가 얼마나 아픈 곳인 줄 알게 된 것이다. 내친걸음, 달리는 호랑이의 기세로 78로 맞끊었으나 기다렸다는 듯 79로 뻗으니 다음 백의 대책이 없다. 랴오싱원의 고민이 깊어진다. 우상귀 80은 ‘궁하면 손 빼라’는 선각의 말씀을 따른 수일까.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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