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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트럼프 지지표, 경합주 잡을 ‘회심의 일격’이 승부 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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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7 면

로이터=뉴스1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4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전국 단위 지지율은 각각 46.6%, 44.8%로, 클린턴이 1.8%포인트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실시간 권위 있는 분석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 RealClearPolitics)’ 자료다. 3차례 TV 토론을 거치며 전반적인 우세를 보인 클린턴이 지난달 28일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던진 ‘클린턴 e메일 스캔들 재수사 폭탄’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양상. 그야말로 결과는 예측 불허다.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열릴 때마다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도 2016년 선거만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거는 없을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라고 하는 부동산 재벌이 ‘워싱턴 기득권 정치’에 신물 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예측 불허의 대접전을 펼쳐 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거부하는 듯한 트럼프 후보의 언행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개별 국가의 주권 존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 없는 무력 사용 금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금지, 개방적이고 비차별적인 국제경제 체제 유지, 인권 증진 등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 요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질서를 미국이 주도해 오는 가운데 한국은 한·미 동맹을 통해 이러한 질서에 편입되어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일궈 냈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선 트럼프 후보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 후보가 거물급 공화당 예비 후보들을 다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제 식구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밖에 나가 힘세고 부자인 척 그만하라”는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미 국민 대다수를 행복하게 할 줄 알았으나 거대 자본가 그룹과 서민층 간의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백인 노동자들만 일자리를 빼앗겼다. 폭력으로 종교적 신념을 관철하려고 하는 무슬림은 기독교도와 함께 지낼 수 없다. 미국은 엄연한 기독교 국가인데 동성결혼 합법화는 ‘과잉 민주주의’다. 이렇게 미국적 가치와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미국이 국제질서를 걱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얘기다. 그 결과 이번 미국 대선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백인 중심주의, 남성 우월주의, 반(反)이민 정서가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났다.

[경합주 대의원 숫자 클린턴 우세 유지]


이에 반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미국이 계속해서 국제질서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예비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처럼 부자 증세(增稅)를 공약해 빈부 격차 해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클린턴 후보는 안보에서는 국제주의, 통상에서는 제한적 자유주의, 국내 정책은 진보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많은 국정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 유권자의 ‘분노 지수’가 급등한 상황에서 소외와 좌절을 느끼는 유권자에 대한 정서적 공감(共感)과 정책적 유연성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선거에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년 말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차 TV토론 이후 선거 판세는 줄곧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벌리는 상황이었다. 한때 12%포인트 앞섰다. 승리를 낙관한 클린턴 후보 진영이 정권 인수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FBI가 클린턴 후보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트럼프 후보와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1월 1일(현지시간)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27일부터 사흘간 전국 1128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트럼프 46%, 클린턴 45%로 트럼프 후보가 전국 지지율에서 클린턴 후보를 앞질렀다.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7월 말부터 지금까지는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대체로 우위를 점해 왔다. 7월 말 클린턴이 트럼프를 4%포인트 정도 앞서다 트럼프의 미국 전사자(戰死者) 가족에 대한 비난 발언으로 인해 8월 중순엔 격차가 6.8%포인트로 벌어졌다. 그러나 트럼프 후보가 그간 ‘막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실토하고 맹렬한 추격전을 전개한 결과 9월 중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접전 양상으로 좁혀졌다. RCP에 따르면 당시 전국 단위 지지율은 클린턴이 2.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격차가 다시 좁혀졌다. LA타임스는 트럼프가 3%포인트 우세, NBC뉴스는 클린턴이 4%포인트 우세한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 1차 TV토론(9월 26일)이 끝난 직후엔 클린턴 후보가 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2차 토론(10월 9일) 직후엔 격차가 다소 좁혀진 것으로 나왔다. 3차 토론(10월 19일) 후엔 클린턴 후보가 4.6%포인트까지 앞서 나갔다. 그러다 지난달 28일 FBI의 클린턴 e메일 스캔들 재수사 발표 이후 지지율 격차가 급격히 좁혀졌고, 마침내 11월 1, 2일 일부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하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전국 득표율이 아닌 개별 주 단위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대의원 숫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전국 단위의 득표율은 큰 의미가 없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또는 민주당 지지가 확고한 주(州)로 분류되지 않는 양당 경합 주(swing states)의 향방이 매우 중요하다. 올 대선에서 민주·공화당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경합 주는 대략 10곳으로 플로리다(29, 이하 대의원 수)·펜실베이니아(20)·오하이오(18)·노스캐롤라이나(15)·버지니아(13)·위스콘신(10)·콜로라도(9)·네바다(6)·아이오와(6)·뉴햄프셔(4) 주다. 경합 주 대의원 수는 모두 130명으로 전체 대의원 수(538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민주당의 경우 1992~2012년 치러진 여섯 차례의 대선에서 수도 워싱턴과 18개 주에서 승리했으며, 이들 선거인단 수는 242명으로 당선 확정에 필요한 270명에서 28명이 모자란다. 플로리다의 대의원 수가 29명임을 고려할 때 플로리다에서의 승리 여부가 매우 중요해지게 된다. 물론 플로리다에서 지더라도 다른 경합 주에서 29명 이상의 대의원을 확보하면 승리할 수 있다.


[3일 기점으로 격차 좁혀지는 속도는 느려져]


그러나 RCP에 따르면 11월 1~3일 현재 플로리다(클린턴 1~2%p 우세), 펜실베이니아(클린턴 4%p 우세), 오하이오(트럼프 5%p 우세), 노스캐롤라이나(접전), 버지니아(트럼프 3%p 우세), 위스콘신(클린턴 2%p 우세), 콜로라도(클린턴 3%p 우세), 네바다(트럼프 6%p 우세), 아이오와(접전), 뉴햄프셔(클린턴 7%p 우세) 등 경합 주에서 클린턴의 대체적인 우세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FBI의 e메일 재수사 발표 전까지 클린턴이 우세를 보인 경합 주에서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 후보 입장에서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1월 3일을 기점으로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가 다소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합 주 중에서 가장 선거인단이 많은 플로리다에서 클린턴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고, 그다음으로 선거인단이 많은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에서 양쪽으로 희비가 갈렸기 때문에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현 시점에서 ‘회심의 일격’이 필요한 상황이다.


클린턴 후보는 트럼프 후보의 여성 비하 태도를, 트럼프 후보는 클린턴 후보의 부정직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FBI가 클린턴 후보의 e메일 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위키리크스나 제3국에 의한 클린턴 후보의 e메일에 대한 불리한 해킹 결과가 터지거나, 트럼프 후보의 조바심이 결정적 실언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어느 쪽도 확실한 승기를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강철 같은 체력으로 유세장을 누비고 TV 광고를 확대하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얼마나 많이 투표소로 끌어내느냐가 승부를 가르게 되는 상황이다. 숨은 트럼프 지지표심이 어떻게 표출 되느냐도 관건이다.


선거 양상이 예측 불허이므로 한국으로서는 속단하지 말고 두 가지 가능성에 다 대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두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와 방향을 잘 비교분석해 보고,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 그리고 한·미 통상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후보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신고립주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통상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북핵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으므로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후보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내’가 아닌 ‘전략적 관심’을 보임으로써 고도의 압박을 동원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끌어내려 할 것이다. 클린턴 후보는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나 단순히 비용 분담 차원을 넘어 한반도·남중국해 문제 등 역내 안보위협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에 ‘역할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북한 문제 외엔 관심이 없고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의 강력한 보호만을 원한다면 인식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역내 이슈에 관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으며 국익의 관점에서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한국 역할의 한계인지에 관해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성한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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