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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시대 당신의 영웅은 어디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4호 30면

놀공의 관객참여형 공연 ‘파우스트 되기’

권오상의 ‘데오도란트 타입 무제의 박찬호’(2013) C-print, Mixed media, 85×80×230cm

영웅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의 영웅은 누구였을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들의 영웅은,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옛 서울역사를 개조해 만든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는 ‘페스티벌284: 영웅본색(英雄本色)’에 힘세고 날쌘 슈퍼맨은 없다. 대신 “우리들의 평범함 속에 영웅적 삶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8개국 24팀 70여 명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영웅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의 전시로, 공연으로 풀어낸다. 영웅담을 그린 옛날 영화들도 행사에 힘을 보탠다.


로비에 설치된 계단식 무대에 무리지어 서 있는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 시리즈 ‘데오도란트 타입’만 봐도 그렇다. 배우 김혜자와 야구선수 박찬호를 제외하면 유명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그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교한 인체 조각으로 유명한 최수앙 작가는 자신 외 5인으로 구성된 ‘모조 기념사업회’의 이름으로 전시장 하나를 채웠다. ‘최평열 과장 기념관’이라는 제목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70대 노인 최평열씨의 삶을 조각으로, 또 그림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젊은 날의 사진들을 다시 그림으로 구현한 방식이 흥미롭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최씨가 작가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최 작가는 “단순히 개인사를 드러낸 것은 아니다”라며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지우의 ‘지우맨-프로젝트 영웅되기’ 중 지우맨 에피소드

장 웨이의 ‘가상극장’

장지우 작가는 ‘프로젝트: 영웅되기’를 통해 사내아이들의 로망을 실제로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자기 스스로를 슈퍼히어로 ‘지우맨’으로 자임하고 가면부터 망토까지 제대로 갖췄다. 평범한 자취생 청년 작가의 방에 설치된 책장을 뒤로 밀치면 그 속에 악당을 물리칠 수 있는 비밀기지가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다. 게다가 2층에는 지우맨의 의상까지 전시돼 있으니, 이를 보는 관객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2층으로 올라가면 중국 작가 장 웨이의 ‘가상 극장’ 시리즈 14점이 널찍한 공간을 냉큼 차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나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인의 사진이 커다랗게 인화되어 설치돼 있는데, 그들의 사진이라면 작품이 될 수 없을 터.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작가는 중국인 300명을 촬영한 인물 사진에서 각각 피부와 머리카락 등 몸의 일부를 가져와 유명인의 얼굴과 컴퓨터로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외형은 그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담은 몸이 아니라 가상의 표피”라는 주장이다.


이기일의 ‘히식스 He 6’는 비틀스를 추앙하며 19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켠을 담당했던 1세대 밴드 ‘히식스(He 6)’의 커다란 사진과 비틀스 매니어의 진귀한 소장품 한 무더기를 같은 공간에 마주보게 해 놓았다. 비틀스에 관한 음반은 물론 관련 서적, 신문 스크랩 등 온갖 종류의 물품에서는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 느껴진다.


이에 비해 놀공의 ‘파우스트 되기’는 전시와 공연이 관객참여형 방식으로 진행되는 융복합 무대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디지털 세상의 소셜미디어 요소와 결합해 게임으로 풀어냈다. 관람객은 주인공 파우스트가 되어 악마 메피스토와 대결을 벌인다. 스마트폰을 들고 악마의 상점에서 친구를 팔아 욕망을 채워가는 가상의 거래를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신수진 예술감독은 “누구나 마음에 영웅을 품고 살아간다”며 “이 어수선한 시대에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불꽃 같은 온기를 전해주는 영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월요일 휴관. 무료. 문의 02-3407-3500. 홈페이지 seoul284.org ●


글 정형모 기자, 사진 문화역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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