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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보다 ‘마이웨이’ 고집…수렁에 더 빠져든 박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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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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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해법으로 박근혜(얼굴) 대통령이 2일 내놓은 ‘김병준 총리’ 카드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일언반구 상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거나 “이런 상황에서도 불통 스타일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 정부, 호남 출신으로 돌파 노려
청와대 “야당 요구 사실상 100% 수용
국회 일임했으면 혼란 더 컸을 것”
정치권 “대통령, 상황 심각성 몰라”
거국내각 구성 불발 가능성 커져

박 대통령의 개각 발표는 대다수 청와대 참모도 까맣게 모를 정도였다. 대통령비서실장 직무대행 자격으로 이날 국회 운영위에 나온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개각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정진철 인사수석은 “어제 연락받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나도 여기(국회) 와서 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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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상임고문단과 사회 원로들을 잇따라 만나면서 정국 수습 방안을 청취했다. 이들이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수습책의 핵심은 ▶야당도 동의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내치의 권한을 총리에게 대폭 이양하며 ▶최순실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해 박 대통령 본인이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병준 총리 카드에 야당이 펄쩍 뛰면서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약 국회에다 총리 선출을 일임한다고 했으면 그 협의가 제대로 잘됐겠느냐”며 “국정 혼란이 더 커져 모든 책임이 청와대로 넘어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총리 지명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 내용면에선 야당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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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논의를 위한 새누리당 최고·중진 연석회의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렸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당내 비박계 중진들의 지도부 총 사퇴 요구에 대해 “우선은 위기를 수습하십시다”라며 거절했다. 왼쪽부터 정병국·나경원 의원, 이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이장우 최고위원. [사진 오종택 기자]

김 후보자는 최근까지 국민의당이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인사고, 임종룡·박승주 후보자는 호남 출신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지지율이 폭락했는데도 박 대통령이 ‘마이웨이’만을 고집한다는 비판 여론이 정치권에서 커지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총리 인선을 야당과 상의 없이 발표했다는 건 국정주도권을 놓지 않겠단 얘기”라며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도 수위가 미지근해 문제가 됐는데 이번 총리 인선도 미봉책으로 이번 사태를 넘기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국 수습의 시나리오가 어설프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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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지난 주말 이틀간 외부 인사들에게 수습책을 듣고 난 뒤 30일 오후 곧바로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했고 2일 내각 개편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야당과의 대화 채널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번 수습책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김 전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전직 청와대 핵심 참모가 검찰에 피의자로 출두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추가 입장 표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께서 이 상황이 얼마나 무거운지 제대로 알고 계신지 모르겠다”며 “이번 주 중 다시 국민 앞에 서서 모든 진실을 아는 대로 다 밝히고 사죄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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