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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부역자들의 앙코르 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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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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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그래, 늘 그런 거다.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 한 마리가 시키는 거고, 웅덩이 흐리는 데 미꾸라지 한 마리면 충분한 거다. 인공지능을 논하는 21세기에서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도, 무당 한 명의 굿판에 정신 잃고 놀아날 수 있는 거다.

문고리 3인방보다도 더 추한 건
제 할 일보다 기업 팔 비튼 수석
정말 못 볼 꼴은 친박들의 행태
이제 그들의 칼춤을 볼 차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늘 간과되는 게 있다. 꼴뚜기가 고개를 디밀 수 없게 잘 진열한 어물전은 욕볼 일이 없을 테고, 막히지 않아 흐름 좋은 냇물이라면 미꾸라지가 ‘생쇼’를 한들 물 흐려질 일 없을 거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정신 줄 놓지 않은 사람이 몇 명만 있었어도 굿판이 이처럼 ‘아사리판’이 되지는 않았을 터다.

온갖 데서, 심지어 마사지숍에서까지 ‘우주의 기운’을 부르던 한 선무당의 막춤을 따라 춘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부역자들의 화려한 백댄스가 없었다면 무당 한 명의 춤이 그토록 화려하지는 못했을 거란 말이다.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는 자들의 춤은 아름답진 않지만 차라리 담백하다. 대통령 전용기에서 처음 본 기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비서실의 대답이 돌아왔다는 이들이다. 어차피 무당이 청와대에 박아 넣은 꼭두각시들이고,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을 뿐이다. 무당을 따라다니며 옷 사 나르고, 전화가 오면 공손히 닦아 건네주고, 무당의 뜻에 따라 국사에 지친 대통령의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줬다.

‘문고리 3인방’이라는 자들의 3인무 역시 추하긴 해도 자기 배역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대통령이 사가(私家)에 있을 때부터 18년 동안 심기 경호에 몸을 바친 이들이다. 무당이 보기에 불필요한 면담 요청이나 보고서를 중간에서 자르고, 무당이 보고자 하는 서류들을 청와대 밖으로 실어 날랐다. 오랜 세월 무당이 고친 원고를 글 쓴 자의 불평 속에서 책임감 있게 지켜냈다. 대통령 눈·귀를 가리고 딴 세상 사람으로 만드는 짓이었을지라도, 주인이 원하는 게 그거였으니 그들만 나무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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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문고리보다 높게 걸린 수석비서관들의 춤은 안쓰러웠다. 민정과 경제를 담당하던 자들의 ‘파드되(2인무)’가 특히 그랬다. 대통령 심신을 홀리는 무당의 ‘인형놀이’를 이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한 건 대역죄에 해당하는 직무유기다. 무당의 어설픈 재단을 위해 대기업 팔목을 비트는 장면은 유치하다 못해 욕지기가 나올 정도다. 재단에 참여했던 민간인들이 범죄 수준의 운영에 놀라 스스로 그만두고 나올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다.

무당 팔꿈치에 매달려 단물이나 빨던 자들의 춤은 말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결국 무당의 뜻이었겠지만 자기는 물론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온갖 공직에 올려놓았다. 호스트바의 남자 종업원들이 사모님들한테 ‘공사 칠(유혹할)’ 때 선물하는 거라는 핸드백을 대통령 손에 들려 외국까지 내보냈다.

여기까지는 다 그렇다 쳐도, 진정 눈 뜨고 못 봐줄 게 따로 있다. 오히려 무당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자들의 춤이다. ‘친박’이라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무당을 지나쳐도 못 본 척하더니, 이제 궁지에 몰린 주인을 구하고자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않는 무모함도 서슴지 않는다. 뜬금없는 단식투쟁으로 큰 웃음 주더니, 생각지 못한 ‘숙변의 역습’으로 일주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 무당의 셀카가 들어 있는 태블릿PC가 무당 것이 아니라고 우기면서도 만약 그렇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란 걸 생각 못한다. “눈이 계속 내릴 텐데 마당을 쓸어서 뭐하냐”고도 하고, “지금은 국민이 아니라 언론과 싸울 때”라고도 한다. 두 해 전 무당 딸 특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반듯하게 잘 자랐더라”고 두남두던 의원은 얼마 후 여성가족부 장관이 됐다.

이런 부역자들의 군무가 당장 돌 맞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무당의 춤이 계속될 수 있게 만든 거다. 그 앞에서 대통령 혼자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던 거다. 무당이 내려간 굿판 뒤에서도 춤은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들었다는 원로 중에는 그 자리에 결코 끼어서는 안 되는 인물도 있었다. 예전 춤판을 총지휘하던 그가 다시 주인을 구할 휘황한 춤사위를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 춤판이 성공할 리 없다. 무당의 본모습은 드러났고, 개똥 세례를 받았다. 이제 앙코르 댄스가 남았을 뿐이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춤이다. 친박들끼리 서로 살겠다고 주인을 부인하고 무당을 난자하는 칼춤일 터다. 번득이는 칼날이 어제의 동료를 향할 수도 있다. 모두 주인이 자초한 결과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가 그러한 부류들의 행태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어떤 춤판이 벌어질지 지켜보자.

“소인이 군자를 재앙에 빠트릴 때는 (…) 피가 산하에 뿌려지고 해와 달이 불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로써 경계하기를, (소인의 행위는) 파리나 개가 돼 치질을 빨아주면서 배불리 먹고 구더기 굴에서 즐겁게 살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그들이 입을 다물고 혀를 묶고 그림자도 없이 숨어 살면서 구차하게 목숨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존재집(存齋集)』 제14권 ‘붕당’)

이훈범 논설위원